매일신문

[야고부] 생활 안전교육 의무화

조두진 논설위원

이태원 참사는 슬픔을 넘어 절망감을 안겨준다. 수많은 인파가 좁은 골목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데, 뒤에서 계속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데, 옆에서는 노래하고, 춤을 추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이 악마여서가 아니다. 사람이 눈앞에서 쓰러져도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것이다.

"호텔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하니, 일층 로비에 외국인 투숙객들만 대피해 있었고, 한국인은 단 한 명도 객실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내 눈앞에 불이나 연기가 보이지 않으면 화재 경보가 울려도 오작동이라고 여기기 일쑵니다." 올해 8월 매일신문 '재난안전수기 공모전' 심사에 참여했던 소방관의 이야기다.

한국에 수학여행 와서 호텔에 투숙하는 일본 학생들은 비상 대피로를 반드시 확인한다. '안내도'를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 인솔하에 직접 대피로를 걸어가 보면서 확인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숙박시설에 묵을 때 직접 걸어 다니면서 대피로를 확인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압사 사고를 막자면 사전통제가 최선이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갑자기 사람이 몰려 사실상 사전통제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가령 유명 연예인이 나타났다 하면 갑자기 사람이 우르르 몰리고 순식간에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태원처럼 많은 숫자가 아니라 수십 명만 갑자기 몰려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안전 및 질서 의식 강화 외에는 대책이 없는 것이다.

이태원 좁은 골목에 몰려든 대다수 시민들이 무심했던 것은 야외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다수 유럽 국가에서는 안전을 학교 정규 과목으로 지정해 실습 위주로 교육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 1, 2학년에 '안전한 생활' 교과가 있을 뿐, 그 이후에는 안전교육을 받는 경우가 드물다. 당연히 위험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지고 적절한 대처법도 모른다.

민방위 훈련, 장애 인식 개선 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 청렴 교육 등과 마찬가지로 '생활 안전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학생뿐만 아니라 성인에 대한 교육도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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