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구호 계획을 밝혔다. 이에, 그와 같은 정부의 지원 대책을 반대하는 국민 동의 청원이 국회 게시판에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해 큰 이슈가 됐다는 이유로 사고 경위를 밝혀내기도 전에 세금을 투입하는 일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표를 의식한 표퓰리즘에 편승하거나 들끓는 여론을 잠시 무마하기 위해 피 같은 세금을 이용해 구호금 지원을 자의적 감상적으로 결행하다 보면 그것이 관행이 되고 어느 시점엔 감당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논지다. 사고의 근본 원인 규명과 안전한 환경 조성, 재발 방지에 세금을 써야 한다는 대안도 내놨다.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워 놓은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한 애통한 사건을 두고 시신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러쿵저러쿵 현실적인 돈 얘기를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 수 있다. 그렇다고 공적 공간에서 정당하게 이의를 제기한 걸 보고 모르는 척할 수도 없고 그 본질을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사안에 대해 지금 말을 보탠다는 것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왕지사 공개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터라 올바른 결론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감히 용기를 낸다.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시에 재난을 당하였다는 사실이 공적 구호금 지원의 합리적 기준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그 점이 우선 의문이다. 재난 규모나 크기는 슬픔이나 충격의 강도를 누적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사회적 파장을 급격히 증폭시킨다. 디테일한 딱한 사연에 감정 이입되거나 방송·언론의 경쟁적 보도에 사로잡혀 흔히 이성적 판단을 잃어버린다. 그쯤에서 정부와 집권 세력을 무단히 원망하는 여론이 형성된다. 대중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이 읽히고 정치 이슈화될 개연성이 커지면 대부분 쫓기다시피 예산 보따리를 풀고 만다. 그런 식으로 잘못된 관행이 굳어지는 법이다.
근본 원인이나 경위, 귀책 사유와 관계없이 재난 규모를 기준으로 공적 예산 지원이 행해지면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통제할 수 없는 우연한 사고로 개인이 불가역적인 엄청난 피해를 입거나 동일 유형의 사고로 기지원 사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한 사람 또는 소수라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적 구호를 받을 수 없다면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부당함을 넘어 위헌 소지마저 있다. 교통사고도 혼자 죽으면 국물도 없고 떼를 지어 함께 죽어야 남은 사람이 득을 본다는 빈정거림이 생뚱맞지 않다. 재난 규모가 구호금 지원 기준으로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세금으로 구호금을 지원하려면 그 사고 원인이 공적이고 그 책임이 국민 개개인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정도로 연대성이나 보편성이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측은지심과 광범위한 애도 분위기에 표를 구걸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을 따르기보다 자발적인 성금이나 조의금을 활용하는 방법이 보다 더 상식적이고 선진적이다. 분향소를 곳곳에 마련할 정도의 분위기라면 현장에서 조문객으로부터 조의금을 직접 받거나 인터넷뱅킹을 통해 성금을 걷는 방법이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재난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규모의 이익을 비례적으로 누릴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몇몇 대기업이 벌써 수십억 원을 성금으로 내놓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형 사고 때마다 구호금을 세금으로 무리하게 충당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 흐르듯 가는 게 순리다.
전 국민 보편적 부담인 세금으로 구호하는 방법보다 자발적인 성금이나 개별적인 조의금으로 도와주는 방법이 슬기로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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