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13>비발디의 ‘사계’ 

안토니오 비발디
안토니오 비발디
서영처 계명대 교수
서영처 계명대 교수

비발디(1678~1741)의 '사계'는 음악에 문외한도 다 아는 유명한 곡이다. 흔히 클래식 입문자들을 위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감상하기 쉬운 곡이다. 18세기 바로크 음악을 입문자들에게 권하는 까닭은 사계절의 변화와 매혹적인 자연을 음악으로 생생하게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13세기 이탈리아 민요에서 파생된 14행의 서정적 정형시 소네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음악이 문학을 재료로 삼고 있지만 사계는 시를 넘어 자연을 바라보는 심오한 영혼의 진심어린 감성이 담겨있다. 그래서 각양각색인 감상자들의 영혼을 조율하고 내면의 자유를 찾아준다. 아마도 비발디가 작곡가이자 사제이기에 음악과 종교를 넘나들며 더 폭넓고 깊은 내용을 작품에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또 비발디의 개성이다.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각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를 반복, 변형하면서 변화무쌍한 음과 빠르기로 자연의 변화를 통일성 있게 구성했다.

비발디의 '사계'를 흔히 자연의 묘사라고 설명하지만, 묘사는 단순히 스케치가 아니다. 묘사는 주관적이고 심정적이다. 풍경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내면을 담는다. 음악은 다른 예술에 비해 주관적이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음악이 만들어내는 계절의 순환과 생성, 소멸의 아름다움은 자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자극한다. 또, 시간의 변천 속에 놓인 인간을 자각시키고 신과 인간, 자연과 인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포괄하며 신의 섭리를 깨닫도록 한다. 이처럼 비발디 '사계'의 특별한 점은 매우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보편 속에 존재하는 주체의 시간성을 다룬다는 점이다.

다른 예술과 달리 음악은 날아갈 듯한 기쁨이나 극단적인 슬픔조차도 절제되고 온화한 방식으로 향유한다. 그래서 헤겔은 미의 영역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야말로 영혼이 자유로워지고 궁핍성의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음악이 자유로움을 궁극의 정점으로 이끌어간다고 했다.

비발디의 '사계'는 표면적인 사계가 아니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계절을 상상한다. 그러면서도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것에서부터 정신적이고 관념적인 것까지를 두루 들려준다. 비발디의 '사계'는 묘사하는 음악이 아니라 사유하는 음악이다. 그러기에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는 것이다. '사계'가 진정한 예술로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소네트)의 의미는 퇴색되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음악은 자기 안에서 향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와 함께 음악회에 간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 서양 음악에 나타나는 자연은 동양 음악에 나타나는 자연관처럼 관조하거나 나를 비우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 자연을 경험하는 역동성을 보인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칭찬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불편해한다. 그들에게는 비발디가 있기 때문이다. "바흐요? 에이, 누가 뭐라 해도 음악은 비발디죠."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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