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주어진 시간, 즉 모든 생명은 '시작과 끝'의 한계는 피할 수 없지만 대체로 공평하게 주어진다. 만남! 설렘의 단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사람과 만나고 많은 얼굴들과 만나, 많은 인연들을 맺고 또 살아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중 사색에 잠기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하는 계절은 아마도 가을 중에서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늦가을일 것 같다. 특히 11월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달인 10월과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 사이에 끼어 있어 어중간한 달이지만 화창하고 오색의 형형색색 화려한 10월과 달리 11월은 비바람 몰아치듯 단풍 낙엽을 맞으면서 출근하면 잠시나마 모두 시인이 되고 사색에 잠긴 철학자가 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대형 참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여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 분노, 절망의 늪에 빠져 과연 안전한 대한민국은 정치적 구호로만 존재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게 한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8년 만에 2022년 10월의 마지막 주말 저녁 서울 이태원에서 또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과연 우리는 8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반성했는가?
정치인, 언론인, 시민단체, 선동가 등 무수한 관련 단체가 대형 참사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제자백가식 말잔치와 남의 탓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세월호 참사는 선주가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무리한 여객선 개조, 선장과 선원들의 직업의식 부재와 해상 재난 교육 부족, 해경의 여객선이 침몰 직전에 있는 경우 선실에 있는 선객을 어떻게 구조해야 하는지의 매뉴얼 부족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한 비극적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차분하게 대책을 세워 바다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직업인들의 안전교육에 얼마나 힘썼는지 의문이다. 최근 자료를 보면 세월호 아픔을 겪고도 해상사고가 2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사회 전체의 안전의식은 별로 개선된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번 핼러윈 이태원 참사도 희생자를 애도하면서 왜 이런 비극적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유사 사고 방지 방안에 대해 차분히 논의하고 점검해야 한다. 하지만 재발 대책 논의 보다 벌써 일부 선동가들은 참사를 빌미로 대통령 퇴진이나 촛불시위를 주장하고 소모적인 사회 분열을 획책하는 조짐이 보여 우려가 된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 유행으로 2년 넘게 엄격한 방역조치를 단계적으로 원상 회복하는 조치를 결정했다. 따라서 그동안 중지된 각종 지역 축제가 봇물 터지듯이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 밀집도가 높은 지하철역, 스포츠 경기장, 인기 있는 공연장, 축제가 있는 거리의 안전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이번에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에게 진정 우리 사회가 추모하는 길이다.
의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2014년 7월부터 한·두 달에 한 번씩 의창이란 공간에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서 보람된 시간이었다. 이번 참사를 보면서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의 지혜가 절실하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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