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세월호, 코로나19, 이태원 그리고 트라우마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꽃을 정리하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연합뉴스
7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꽃을 정리하고 있다. 국가애도기간은 지난 5일 종료했다. 연합뉴스
김수용 뉴스국 부국장
김수용 뉴스국 부국장

304명의 사망자가 나온 세월호 참사 8년 만에 156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3만 명 가까운 사망자를 낳은 코로나19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대규모 참사에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정신 건강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를 더 부추긴 것은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SNS)에 잇따라 올라온 참사 현장 영상이다. 안타깝고 참혹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전달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극성 유튜버들을 막아섰지만 도리어 "내 휴대폰으로 내가 찍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까지 보였다고 한다. 영상이 메신저를 타고 퍼지면서 일부러 보기를 꺼리던 시민들도 공포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자극적 영상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세월호를 본 충격을 떠올리게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접수한 이태원 참사 관련 온라인 영상·사진 삭제 요청은 지난 5일 기준 100건에 이른다.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유튜브 등 플랫폼 측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관련 영상을 삭제 중이라고 한다. 이태원 참사 후 한 언론사가 263명(1995~1999년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7.2%(203명)가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공황장애, 우울장애, 무력감 등이 다른 세대보다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인 '보건사회연구'(2020년)에 논문 '세월호 참사 전후 한국 성인의 우울 궤적 분석'이 실렸다. 2012∼2018년 한국복지패널 자료를 분석해 세월호 전후 성인들의 우울 수준을 살펴본 내용이다. 19세 이상 성인 9천393명을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응답자들의 우울 수준은 2012~2018년 6점대에 머물다가 2014년에만 8.76점으로 높아졌다.

특히 자아존중감과 이타심이 높을수록 우울도 더 컸다. 정치적 불만이나 보수, 진보에 따른 의미 있는 차이는 없었다. 우울 현상이 전체적 현상이라는 의미다. 우울 수준은 바로 이듬해인 2015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논문 저자인 김성용 당시 한양대 연구교수는 "그대로 두어도 자연적으로 치유된다거나 트라우마에 대한 체계적 개입과 장기적 지원이 필요 없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잇따른 참사를 경험한 세대가 겪는 좌절과 공포다. 코로나19 사태 역시 국가의 무기력함을 각인시킨 전형적 사례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사태는 이태원 참사 하루 전날 기준 2만9천31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청소년기에 세월호 참사를 겪고, 20대로 접어들면서 코로나19와 이태원 참사를 목도한 이들이 느끼는 공허함, 무력감, 공포감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전혀 예측할 수도, 대비할 수도 없는 사고였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국가 시스템에 대한 회의감이 들 수 있다. 어떤 상황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과 어느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두려움은 체제에 대한 격렬한 거부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궁극적인 회의감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든, 어떤 정치적 지향점을 갖고 있든 상관없이 미래 결정적인 시점에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트라우마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영혼을 갉아먹는다. 스스로 아픔을 인지하고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대한 정밀하고 정성스러운 고찰과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바로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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