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이 걷혔다면서 왜 전기밥솥 하나 주는 곳이 없냐. 정말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 좀 전해 주거라."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서 만난 80대 할머니 A씨가 손을 꼭 잡으며 건넨 말이다. 이곳은 지난 9월 6일 태풍 '힌남노'로 인근 칠성천이 범람하며 1천여 가구에 침수 피해가 났다. A씨도 당시 수해로 평생 살아온 집이 머리 높이까지 물에 잠겼다.
하나 있는 아들은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홀로 남은 A씨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바라기는 힘든 상황이다. 장롱이며 TV, 서랍장은 물론이고 벽지와 그릇 등 남아 있는 세간살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한탄스럽게도 재난은 늘 나이 들고 가난한 사람들부터 찾아온다. 막막한 이들에게 십시일반 모아진 의연금(성금)은 그나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이다.
다행히 온정이 쏟아지며 140억 원이 넘는 의연금이 답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이라 표현한 점은 정확한 액수를 파악할 수 없는 현 구조 탓이다. 이 추정액도 전부 포항 지역 이재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구호법)은 의연금을 행정안전부가 승인한 단체가 일괄 모금한 후 정부의 관리·운용 규정에 따라 지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올해는 전국재해구호협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두 곳이 맡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탁식 등 행사를 진행하지만, 실제 돈은 전국재해구호협회의 은행 계좌로 모여진다. 이번 의연금은 지난 8월 수도권에 내린 폭우를 포함한 수해 전체로 집계되기 때문에 딱 얼마만큼의 금액이 포항을 위해 모인 의연금인지 분간할 수 없다.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만큼 기부자가 '어느 지역을 위해 써 달라'고 말해도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배분하는 금액은 특정 지역과 상관없이 '공평하게'가 가장 큰 기준이다.
전국재해구호협회 관계자는 "과거 포항 지진 때나 이번 태풍 구호 지원금도 수도권 등 타 지역에서 많이 모금하는 경향이 있다. 재해구호법은 상황·지역별로 편중·차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포항시가 '모금액 중 절반 정도밖에 내려오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액이며 구호 물품이며 모두 협회가 강제하는 것처럼 보이니 당장 이재민을 마주한 지자체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이를 협회의 잘못만으로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수해 현장을 찾아와 빨래·급식·구호 키트 배분 등 봉사활동에 나선 이들에게 모욕적인 말이다.
문제는 현실성 없는 재해구호법이다. 얼마의 의연금이 모이든 지급할 때는 사망·실종 유족 1천만 원, 주택 전파 500만 원, 반파 250만 원, 침수 100만 원 등 상한액이 분명하다. 주택이 몽땅 떠내려간 사람에게 500만 원이라니, 참 터무니없는 액수이다.
이러한 문제로 지난 2020년 10월 정희용 국회의원(국민의힘)이 지정 기탁 의연금은 심의·의결 없이 기부자 의사대로 쓰일 수 있게 하는 재해구호법 개정 법률안을 제출했으나 행안부 상임위원회에 2년째 계류 중이다.
무작정 쓰게 되면 생기는 부작용도 있겠지만, 당장 올겨울을 보내기 힘든 눈앞의 이재민들을 위해 '정부·지자체·협회가 모여 논의해 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어쨌든 이재민을 위해 쓰라고 국민이 맡겨 놓은 의연금이다. 이재민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쓰일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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