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후진국형 10.29참사, 국가는 없었다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핼러윈 축제가 있던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6명이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할 수 있었던 사고였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다.

이른바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린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 1명이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통계적 법칙을 말한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대재해는 사소한 것을 방치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현상 분석과 대응에도 적용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국정 운영 측면으로 확대해서 바라보면 대통령의 '안전 의식'이 이번 참사의 원초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월 22일 경남 창원의 원전 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지난여름 물난리 와중에 아파트가 침수되는 현장을 보면서 유유히 퇴근했는데, 그날 밤 강남은 물바다가 되었고 침수된 지하 주차장에서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안전 의식'이 국정 운영과 정부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대통령의 안전 의식이 원초적 이유라면, 근본적인 원인은 바닥을 치는 대통령 지지율 때문이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은 마약 단속을 위한 시약을 대량 구매하고 마약 단속 계획을 수립했다. 서울경찰청의 핼러윈데이 축제 기간 '마약류 범죄 단속·예방을 위한 특별 형사 활동' 문건에 의하면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이태원과 홍대 클럽 등 군중 밀집 지역에 연인원 형사 201명 배치 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10월 29일에 인파가 정점을 이룰 것으로 예상'이라고 적시하며 참사가 발생한 10월 29일에 이태원, 홍대에 99명을 집중 배치했다. 또한 향후 계획으로 '핼러윈 기간 중 관서별 주요 검거 사례 등은 적극적인 홍보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경찰은 핼러윈 축제 기간 많은 인파가 운집할 것을 예측했으나 안전 대책은 없고 마약 단속 실적 쌓기 현장으로 대응한 것이다.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10·29 참사를 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태도다.

정부는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을 하고 있다' '서울 시내 집회·시위로 인해 경찰력이 분산됐다'는 발언을 해 공분을 샀다.

이는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군중 밀집형 사고에 대한 '전조 현상'이 경찰 내부에 여러 차례 보고됐음에도 서울청은 경찰력을 현장에 추가로 배치하지 않았다. 참사 당일에도 사고 4시간 전부터 79건의 112 신고가 있었지만, 서울 도심에 대기하던 81개 기동대는 시위가 끝나자 모두 철수했다. 그래서 우리는 10·29 참사를 인재라고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죽음 앞에 국가는 없었다.

정부는 꼬리를 자르고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참사 발생 직후 이태원 파출소에 책임을 넘기려 하고, '밀어 밀어'를 외쳤다고 하는 정체 모를 토끼 머리띠 남성을 제물 삼으려 엉뚱한 곳으로 국민 시선을 돌리고 본질을 흐리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제물 삼으려 했던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참사 전에 현장을 떠났다는 알리바이를 입증한 것으로 전해진다.

10·29 참사를 대하는 정부와 언론의 관점은 국가 시스템 점검보다는 사고 책임자 규명에 맞춰져 있다. 책임자 규명은 꼬리 자르기로 결론지어질 수밖에 없다.

누가 '무엇을 하지 않았다'보다 '왜 하지 않았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국가 위기 관리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 점검하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밝혀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떻게 하겠다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가의 존재 의미를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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