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솔푸드'는 미각(味覺)에만 달려 있지 않다. 먹을 때의 분위기, 당시의 기분, 주위의 풍경 등 '심리적 공간'에도 크게 의존한다. 2007년 개봉한 미국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서 어떤 요리에도 평점이 박하기로 악명 높은 음식평론가 안톤 이고를 울게 한 음식은 흔한 프랑스 가정식이었다. 그가 라따뚜이를 먹는 순간 어린 시절 엄마가 해줬던 라따뚜이를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객관적 가늠자를 자부하던 평론가의 혀도 결국 경험치에 결부되더라는 것이다. 호박, 가지, 토마토 등 흔한 일상의 재료로 만들어 내놓은 음식이었건만 '황후의 밥, 걸인의 찬'에 비견될 만큼 또 먹고 싶은 맛으로 표현됐다. 영혼을 움직이는 맛이란 '고향의 맛'이나 '며느리도 모르는 손맛' 등으로 계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이한 맛 경험은 최고의 기억 편집 기술인 '환상'을 덧발라둔다. 위로를 주는 음식으로 불리는 '솔푸드'가 시련기, 회복기 기억에 끈끈하게 달라붙는 이유다. '눈물 젖은 빵'만큼 사연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군대 훈련소에서 먹는 초코파이, 콜라, 냉커피 등이 영혼을 흔들어 '개종'(改宗)을 감행하는 훈련병들이 양산되는 게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드라마에서 자주 보이던 접빈의 대표 메뉴 커피는 현실에서도 통했는데 커피, 크림, 설탕을 각 두 스푼씩 넣어 섞는 게 '국룰'(전 국민적인 규칙)이었다. 믹스커피는 국룰의 황금비율을 계량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등산 등 국내 여행은 물론 라면, 소주와 더불어 해외 여행 때도 챙기지 않으면 원성이 쏟아지는 품목이 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지난 4일 밤 봉화 아연 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두 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면서 다시 한번 이목을 끌고 있다.
물론 사고 발생 열흘째인 221시간 만에 가족의 품에 이들을 돌려보낸 가장 큰 힘은 구조될 것이라는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였을 것이다. 지하 190m 갱도에 갇혔던 이들이 무사했던 동력 중 하나가 믹스커피였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예전 시골에서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때나 마실 수 있었다 해서 '잔치 커피'라고 불리기도 했던 믹스커피에 무공훈장처럼 '기적 커피' '생존 커피'라는 예칭을 더 달아도 될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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