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빠져드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나에게 책은 아빠를 향한 도전이었다. 아빠 방을 가득채운 어려운 제목들의 책을 한 권 한 권 도전하는 것이 아빠를 닮고 싶었던 나의 목표였다. 중학생 어린 나이에 '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 '태백산맥'(조정래) 같은 책을 읽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어도, 끝까지 읽었다는 것 자체로 보람찬 하루를 보낸 듯 만족스러웠다. 내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첫 계기였다.
사서로서의 삶을 시작하고자 마음먹고 처음 근무를 한 곳은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 있는 도서관의 어린이실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시작의 마음으로는 다정하고 상냥하게 아이들을 맞아주고 좋은 책을 권하고 건전한 독서환경을 제공해주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을 했지만, 어린이실은 하교가 시작되는 시간부터는 "수시로 조용히 하세요!"를 외쳐야 하고, 도서관에서는 "핸드폰, 게임 안 됩니다!"를 권고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중에는 차분히 책을 고르고 독서를 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학교와 학원사이 또는 학원과 학원 사이 막간을 이용해 어린이실을 드나드는 아이들도 꽤나 많았다. 목적이 독서가 아닌 만큼 내가 책을 권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적었다.
"아줌마, 그 책 뭐예요?" 사서라고 불리는 것은 포기하고 그나마 선생님이라고 종종 불러주는 아이들 속에서 아줌마라 나를 부른 아이는, 평소에도 막간을 이용해 드나드는 아이였고, 절대 책을 읽지 않는 아이였다. " '파도야 놀자'라는 책이야." 좋은 책을 소개해주고 싶었던 평소의 마음과는 달리 제목만 말해주고 말았다. '아줌마'란 호칭에 실제 아줌마이면서도 약간의 상처를 입었나 보다. "읽어봐도 돼요?" 그렇게 그 아이는 글자 없이 그림만 가득한 이수지 작가의 책을 가져가더니 한참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는 "비슷한 책 또 없어요?"하고 물었다. 당장에 생각나는 책이 하나도 없어, "다음에 오면 찾아놓을게"하고는 아이를 보냈다.
그것이 그 아이에게 책을 소개해주고, 그 아이가 책을 계속 읽게 되는 첫 시작이었다. 글자 가득하고 어려운 말이 많은 아빠책을 선호했던 나와 달리, 그 아이는 글자가 하나도 없는 그림 가득한 책들을 좋아했다. 아마 작가의 그림들을 보며 자기의 이야기를 그려나갔던 것이 아닐까. 요즘 가끔 어린이 책 중 그림이 가득한 책들을 보면 나를 아줌마라 부르던 그 아이가 생각난다. 그리고 좋은 사서가 되겠다는 첫 마음을 다시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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