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지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허용 기준을 담은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중절수술 가능 여부와 비용 등이 병원마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가 합법도 불법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현실적인 기준을 반영한 입법이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0년 12월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종교계, 여성계 등의 의견이 대립하면서 국회는 지금까지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임신 6주 이전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 아예 기간 제한을 없애는 방안 등 6개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10일 매일신문이 대구 산부인과 병·의원 20곳에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한지 문의한 결과, 수술을 하지 않는다는 곳은 4곳이었고 나머지 병·의원들은 가격이나 기준이 천차만별이었다.
A의원에선 임신 6주 기준 수술비가 55만원이었고, 주수가 한 주씩 지날 때마다 비용이 5만~10만원씩 추가됐다. B의원의 경우 임신 6주까지는 80만원, 7주 이상부터는 10만원이 추가됐다.
이 밖에 가격이 10만원, 20만원인 두 가지 영양제 중 하나를 필수로 선택해야 하는 곳이 있었고, 일부 병·의원은 수술비를 현금으로만 받는다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국내에선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받은 인공임신중절 약이 없어 관련 약의 유통, 판매는 모두 불법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인공임신중절약(미프진)을 판매한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맘카페에서 '중절수술 병원을 문의한다'는 제목의 글을 클릭하자, 미프진을 구할 수 있다는 사이트 링크와 카카오톡ID가 댓글에 달려 있었다.
취재진이 카카오톡으로 판매자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36만~59만원을 내면 택배로 약을 받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궁에 영향을 주는 약이다 보니 처방 없이 정확한 용법을 모르고 복용하면 과다출혈의 가능성이 있다"며 "경우에 따라 자궁을 다시 한번 긁어내는 시술을 해야 할 수 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음번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에선 음성적인 낙태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해 낙태 허용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주 경북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낙태가 가능하다면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법으로 제시해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 가능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원치 않은 임신'과 같은 (모호한) 기준이 아니라 예를 들어, '아주 심각한 염색체 이상이 있다'고 할 때는 가능하다는 식으로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계에서는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및 접근성 확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안전한 임신 중지를 해주는 병원이 별로 없기 때문에 비용과 의사 경험이 천차만별이고, 낙태를 적극적 의료 행위로 보지 않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굉장히 불이익이 가는 상황이다"며 "대체 입법을 통해 식약처가 유산 유도제에 대한 사용 승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인공임신중절을 건강보험료에서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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