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필수 의료 인력난] 수술 만으로 병원 운영 안 돼…상응하는 대우 따라야

뇌수술 신경외과 병원 "수술만 해선 수익 저조…입원 및 각종 검사비 있어야 운영 가능"
개원 어렵고, 환자 중증도 높은 진료과 지원율 해마다 저조
대구 수련병원 6곳 전공의 지원율 2019년 96.1%→올해 85.6%로 급감

경북대병원 의료진들이 구급차로 이송돼 온 환자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경북대병원 의료진들이 구급차로 이송돼 온 환자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지난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A씨가 뇌출혈 증상으로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제대로 된 수술을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뒤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A씨는 개두술(開頭術·두개골을 열어 뇌를 노출시켜 진행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해당 병원에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교수 2명이 각각 해외 학회, 지방 출장 중이었다.

이를 계기로 국내 최고 상급 종합병원에서조차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2명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필수 의료 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위험 부담 큰 수술, 수익은 저조

지역 의료계에 따르면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에는 현재 개두술이 가능한 신경외과 교수가 각각 2~4명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갈수록 전공이 세분화되면서 위험 부담이 큰 전공은 선택하지 않으려는 의사가 많아졌다.

특히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하더라도, 수익은 저조해 의료진 이탈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신경외과를 운영하는 2차 의료기관 관계자는 "뇌혈관 분야는 수술로 얻는 수익만으로는 병원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가가 낮다"며 "수술 수가와 의료진 인건비만 놓고 보면 뇌혈관 수술은 안 하는 게 맞을 정도"라고 했다.

이어 "다만 신경외과의 경우 중증 환자가 많기 때문에 환자들의 입원 기간이 길다. 즉 환자들의 입원에서 나오는 수익과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과 같은 각종 검사로 발생하는 수익이 합쳐져야 그나마 병원이 먹고 살 정도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른 병원 관계자도 "신경외과 수술에서는 카테터 등 기구나 장치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자체가 굉장히 고가이다. 진료비로 수천만원을 낸 환자들은 병원이 굉장히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병원에 떨어지는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신경외과로 전공의를 지원하더라도 세부 전공에서는 뇌보다 척추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대구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혈관 내로 이뤄지는 시술에 비해 개두술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2배 이상 걸리고, 간혹 당직도 일주일씩 통째로 번갈아 서야 할 정도로 고되다. 젊었을 때는 의무감에 밤을 새워서라도 근무를 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동력이 떨어진다"며 "요즘 젊은 의사들은 명확하다. 일이 힘들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우가 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료 과목별 희비 교차

지역 수련 병원 6곳의 최근 4년(2019년~올해) 간 진료과목별 전공의 지원 현황을 통해 인기·비인기 진료 과목을 분석한 결과, 정원 대비 지원율이 100% 이상인 진료과는 ▷피부과(158.8%) ▷영상의학과(158.3%) ▷재활의학과(148.2%) ▷정형외과(137.2%) ▷성형외과(128.5%) ▷정신건강의학과(128.1%) 등이었다.

반면, 당직 근무가 많고 개원이 어려운 진료 과목인 흉부외과와 응급의학과는 지원율이 각각 50%, 75.6%에 불과했다.

특히 2019년 이후 4년간 핵의학과와 방사선종양학과는 각각 15명과 9명을 모집했지만 모든 수련병원의 지원자가 0명을 기록했다.

대학병원 관계자는 "근무 여건이 좋고, 유병률이 높아 개원을 했을 때 환자 확보가 용이한 진료 과목으로 전공의가 쏠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 분야가 많아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진료과도 마찬가지"라며 "반면 환자 중증도가 높거나 응급 상황이 많고, 개원이 어려운 과는 지원자가 적고 수련 과정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 관계자는 "많은 병원들이 비급여 진료로 먹고살기 때문에, 각 진료과들이 기를 쓰고 비급여 분야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수가 정책 변화로 과거 인기가 높던 진료 과목이 비인기과로 뒤바뀌기도 한다.

방사성 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해 환자를 진단·치료하는 핵의학과의 경우 2000년대만 해도 지원자가 넘쳤다. 그러다 2014년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와 관련한 급여가 대폭 삭감되고 급여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전공의 지원이 급격히 줄었다.

지역 한 대학병원 핵의학과 교수는 "수가 정책이 바뀌면서 지역 대규모 병원들이 하나둘 관련 기기를 팔아버렸다. 상황이 이렇자 핵의학과 전공의들도 도중에 수련을 포기하고 다른 전공에 다시 지원하는 일이 있었다"며 "당시 핵의학과 전문의들은 전공과 관련이 없는 보건소 등으로 빠져버리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지원율 저조 악순환

지역 수련병원으로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줄어들면서 비인기 진료 과목의 전공의, 교수들은 갈수록 업무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병원 내 당직, 수술 등에서 전공의들의 역할이 큰 만큼, 지원을 기피하는 진료과는 지원율이 갈수록 저조해지는 악순환에 놓인 것이다.

지역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지역 대학병원 중 한 곳만 전공의들이 4년 차까지 모두 근무하는 상황"이라며 "새로 유입되는 전공의들이 없으면 당직을 기존 인력이 나누어 서야 해 업무 강도가 높아진다. 수련 도중 이탈하는 전공의가 생기면 기존 구성원들의 사기가 떨어져 다른 전공의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한 대학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과 특성상 수술을 진행한 환자에게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당직이 아닌 날에도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근무 환경 때문에 학생 때는 흉부외과에 관심을 보였더라도 실제로 과를 선택할 때는 현실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는 개원을 하지 않고 대학병원에 남아 교수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요즘은 격무와 연구 실적 압박에 시달린다는 인식 때문에 대학병원에 남으려고 하는 학생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우려했다.

◆지역 전공의 지원율 갈수록 하락

수도권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지방 수련병원에 지원하는 전공의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악순환도 심화하고 있다.

지역 수련병원 6곳의 전공의 모집 지원율을 분석한 결과, 2019년 96.1%에 달하던 지원율은 2020년 99%로 소폭 높아졌지만 ▷2021년 90.7% ▷올해 85.6%로 급감했다.

이 기간 지역 수련병원들의 총 전공의 모집 정원은 208명에서 224명으로 증가했지만, 지원자는 200명에서 192명으로 감소했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의대는 전국 각지에서 수험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이들이 졸업 후에는 지역 병원에 남지 않고 출신 지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지역 출신이라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수도권 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이어가려고 하는 학생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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