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는 핼러윈 축제기간중 벌어졌다. '핼러윈'(Halloween)은 '올 핼러우스 이브'(All Hallows' Eve)의 준말이다. '핼러우스'(Hallows)는 '성인들', '윈'(e'en)은 '이브'(eve)의 축약형이니 '모든 성인들의 저녁'이라는 의미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전날 24일 저녁이다. 핼러윈은 10월 31일 저녁이므로 다음날인 11월 1일이 주요 축일이라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만성절(萬聖節, All Saints' Day)이다.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리는 축일. 그러니까, 핼러윈은 만성절 전날 저녁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로마 이전 켈트족 풍습이 녹아들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갈 때 지하에서 망령이 올라온다고 믿었고, 망령을 막으려 기이한 분장에 음식을 바치며 무사를 빌었다. 이 시기가 만성절 무렵이었다. 켈트 전통이 만성절과 융합돼 핼러윈 풍습을 낳은 거다. 켈트 전통이 강하던 아일랜드인들이 1840년대 대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며 핼러윈 풍습을 가져갔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호박가면을 쓰고 이웃집에 초컬릿 얻어먹는 정도에서 1930년대 어른들의 가면 행렬로 확장됐다. 2000년대 한국에서 핼러윈은 술과 춤을 즐기는 문화변용(Acculturation)을 일으켰다. 행렬, 음주 축제의 기원은 로마다. 고대 로마의 환락축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교황청 박물관 시스루 여성 야한 춤사위
이탈리아 수도 로마 북서쪽 티베레강을 건너면 바티칸 광장으로 이어진다. 광장 너머로 웅장한 성베드로 성당이 탐방객을 압도한다. 베드로는 기독교를 전파하다 순교한 12사도의 한명으로 초대 로마 교황이라 불린다. 로마에서 순교한 베드로 무덤 자리에 1506년 르네상스 건축가 브라만테의 설계로 대성당 공사의 첫삽을 떴다.
120년 뒤 1626년 낙성식을 가졌다. 베드로 무덤은 지금도 성당 한가운데 모셔졌다. 르네상스 거장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 피에타도 그 옆에서 탐방객을 만난다. 성베드로 성당 뒤편은 교황이 거주하는 교황청 건물이다.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그리스 로마 유물 박물관으로도 이름 높다.
B.C 2세기 헬레니즘 바로크를 상징하는 조각, 라오콘 군상은 그중 백미다. 트로이 신관 라오콘이 두 아들과 바다뱀에 휘감겨 고통 속에 죽어간다. 고통과 번민의 삶에 대한 통찰을 안겨주는 이 대작에 대해 로마시대 1세기 대플리니우스는 티투스 황제(재위 79-81) 궁정에 설치돼 있었다고 소개한다. 로도스섬 출신 아게산드로스 등이 조각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1506년 로마에서 출토된 뒤 교황청 피오클레멘티나관 야외 뜰에 전시중이다. 이 라오콘 군상 뒤쪽 벽면에 특이한 모자이크 한 점이 시선을 잡아끈다. 포도주 단지 암포라 오른쪽으로 4명의 인물이 나온다. 짧은 투니카를 입은 남성이 이중피리 아울로스를 불며 리듬을 탄다. 그 옆으로 반바지 수불리가쿨룸만 입은채 캐스터네츠를 든 남성 2명이 춤춘다.
두 남성 사이를 보자. 모자이크의 아이 캐쳐, 한 여성이 양손을 치켜든 채 열정적인 춤사위를 선보인다. 복장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스루(see through) 망사옷이다. 발끝부터 굴곡진 엉덩이의 윤곽이 모두 드러난다. 로마시대 모자이크이므로 로마인들이 즐기던 축제의 한 장면을 묘사한 거다.
◆나폴리 박물관 속옷 벗어든 폼페이 무희
이번에는 발걸음을 이탈리아 남부로 옮겨보자. B.C 6세기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새로 만든 도시 네아 폴리스(Nea Polis), 줄여서 나폴리(Napoli)다. 멀리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
으로 나폴리만의 산타루치아항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폴리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은 로마 문명의 살아 숨쉬는 교과서로 손색없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79년)로 묻혔다 발굴된 폼페이 출토 유물 대부분이 이곳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그중 핵심적인 시각 예술품들은 박물관 2층 비밀의 방(secreet cabinet)에서 탐방객을 기다린다. 전시작품 중 오푸스 섹틸레(대리석을 큼직하게 잘라 만든 작품) 한점에 시선이 고정된다. 한 여인이 긴 드레스를 입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무아지경에 빠진 표정으로 춤추는 장면이다. 왼손에는 가슴에 차고 있던 스트로피움(로마여인 브레지어)을 벗어 들었다. 가슴이 드러난다.
앞을 보자. 남성의 상징을 곧추 세운 조각이 서 있다. 숲속의 정령이자 생식과 풍요를 상징하는 파우노(사티로스)다. 포도주의 신 바쿠스(디오니소스)를 따르는 남자 시종이다. 바쿠스(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열광적 춤사위를 선보이는 여인은 디오니소스의 여성 시종 마에나드의 중의적 표현이다.
◆튀니지, 독일 로마의 반라 댄스... 바카날리아
로마문명의 북방 한계선은 독일 라인강이다. 라인강변 대도시 쾰른(Cologne)은 로마제국이 건설한 식민지 콜로니아(Colonia)가 변한 말이다. 쾰른의 로마 유적지를 비롯해 지중해 남쪽 북아프리카 튀니지, 로마제국 동쪽 변방인 터키 로마 유적지... 어딜 가도 볼수 있는 모자이크에는 예외 없이 반나 차림으로 열정적인 춤동작에 몰입한 여인이 등장한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축제 바카날리아(Bacchanalia)에서 춤추는 여인이다. 바카날리아는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표현 바쿠스(Bacchus)를 기념하는 축제다. 그리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로마의 바쿠스는 단순히 포도주의 개념을 뛰어넘는다. 대지의 신이자 생식, 풍요를 상징한다.
로마의 바카날리아에서는 남녀가 뒤엉킨 행렬에 이어 제물 봉헌등의 희생의식이 치러지는 것은 물론 광란에 가까운 춤과 노래가 펼쳐졌다. 환락축제였다.
◆로마 환락축제 기원 그리스 디오니시아
다시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 비밀의 방 전시실로 가보자. 역시 폼페이에서 출토한 1세기 프레스코 한점을 보는 탐방객의 눈은 이내 휘둥그레진다. 피리를 불고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남녀가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B.C59-A.D17)는 바카날리아에서 과도한 음주, 성적 행동, 폭력이 난무했으며 무려 7천여명이 체포된 적도 있다고 적는다. 과장이었을까? B.C186년 로마는 바카날리아의 규모를 제한하는 법령을 반포한다.
카르타고와 국가의 운명을 건 2차 포에니 전쟁(B.C218-B.C202)을 막 끝낸 상황에서 사회 풍속을 다잡기 위한 측면이 컸다. 하지만, 민간이 조직한 바카날리아에서 사회문제가 발생했음을 말해준다. 폼페이 주택 벽에 남아 있던 환락축제 장면에 잘 묻어난다.
로마사회에 바카날리아가 등장한 것은 B.C200년 전후다.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를 통해 유입된 문화다. 바카날리아의 기원이 그리스 사회였음을 말해준다. 그리스 문명의 심장부 아테네에서는 매년 3월 '도시 디오니시아(Dionysia)' 축제를 펼쳤다. 춘기대제(春期大祭), 봄철 농번기를 앞두고 펼쳐진 일종의 풍년 기원 대축제다. 시민들이 참여한 화려한 행렬 폼페(pompē)가 펼쳐졌다.
여기서는 나무로 깎거나 청동으로 만든 큼직한 남성의 상징 팔로이(phalloi)를 정성스럽게 들고 움직였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디오니시아 행렬의 핵심행사다. 이어, 소를 잡아 바치는 희생의식이 펼쳐졌고, 디오니소스 찬양시 디시램(dithyramb) 낭송이 이어졌다. 낭송은 축제에 자금을 댄 후원자들 코레고이(chorēgoí)가 맡았다. 이 열정적인 찬양시 낭송에 연기가 가미되며 연극이 태어났다.
아테네에서 처음 비극공연이 상연된 것은 B.C 534년이다. 이후 유명작가들이 참여한 공모전 당선작품들이 디오니소스 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스 비극 3대 작가 아에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이 B.C 5세기 그리스 문학을 풍성하게 일궈낸 비결이다. 봄철 농사 개시에 앞서 그리스에서 국가 주도로 펼쳐졌던 행렬과 연극 중심의 디오니시아 축제. 이것이 로마로 넘어가 민간 주도 바카날리아로 문화변용을 일으키며 지구촌 환락축제의 기원이 된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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