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건강한 겨울 나기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차다. 가을을 물들이던 단풍은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땅에 뒹굴고, 겨울은 찬바람과 함께 가을을 저만치 날려 보내고 있다. 다시 겨울이다. 늘 그렇듯 올 한 해도 겨울로 시작했고 겨울로 마무리될 것이다.

겨울은 순환기 질환자들이 견디기 힘든 시련의 계절이다. 환자가 힘들면 의사도 바빠지기 마련이다. 급증한 환자 때문이기도 하고, 쇄도하는 순환기질환 강의 요청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특정 날씨나 기후에 따라 잘 발생하는 질환이 있는가?'를 주제로 한 지역 방송사의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을 한 적이 있다. 기원전 430년,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저서 공기, 물, 장소에서 '특정한 기후는 질병의 발생과 연관이 있다'고 기술하였다. 급성심근경색증, 심근염, 심부전, 급성 대동맥박리증, 심내막염 등이 대표적인 겨울철 심장질환으로 강의는 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인 급성심근경색증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하지만, 강의 내내 사회자 뒤쪽 스튜디오 벽면을 비추는 그림이 마음에 걸렸다. 두 마리의 뱀이 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휘감고 있는 로고였다. 바로 헤르메스의 지팡이인 '카드세우스'다. 헤르메스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이다. 건강 관련 방송에 맞지 않는 그림으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제작진에게 로고의 오류를 지적하자 고액을 들여 교체한 로고로 수년간 사용 중이었다고 난감해했다. 수년간 잘못된 로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아마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착각을 해서일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이다. 그도 뱀이 감겨진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그의 지팡이는 세계 각국의 구급차, 의료 기구 등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헤르메스의 지팡이와는 달리 한 마리의 뱀이 감겨져 있고 날개도 없다. 얼마 전까지 대한의사협회, 대한내과학회 등의 전문가 단체도 혼동하여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로고로 사용한 적이 있다.

이런 오류들의 특징은 누가 바로잡아 주기 전까지는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류를 지적해도 쉽게 교정되지 않는다는 것도 속설이나 편견의 특징이다. 예를 들면,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는 잠언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술가 중 한 명이 한 말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 말은 '히포크라테스 전서'에 쓰여 있는 말이다. 여기서 '예술'의 올바른 번역은 '기예', 즉 의술을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잠언도 실은 그리스의 델피 신전 입구 현판에 새겨진 경구이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도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기 전 마지막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로마의 법률 격언인 '법은 엄하지만 그래도 법'에서 처음 기원한 말이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를 찾았다. 그가 죽기 전 남긴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라는 말의 의미는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알 것이다.

의학의 영역은 속설이나 편견 같은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의외로 많은 분야이다. 하지만, 사실과 거짓 정보를 구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화를 내는 사람보다 화를 참는 사람이 심장질환에 더 잘 걸린다.', '이마에 주름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면 심장질환을 조심하라'는 말들은 그 근거를 찾기 힘들지만 근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기 일쑤이다. 건강보조식품이나 기능성식품의 '건강', '보조', '기능성'이라는 단어가 알려진 효능 이상의 기대를 갖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학의 근간은 근거중심의학이다. 예방, 치료, 재활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연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손쉽게 건강을 지킬 방법은 없다. 올겨울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보내려면 근거가 입증된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하고 운동, 음식 조절, 체중관리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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