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백종원이 출연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부쩍 줄었다고 느끼는 분이 적지 않을 게다. 하지만 방송이 준 건 아니다. 다만 백종원은 유튜브 개인방송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개인방송을 통해 보여주는 콘텐츠가 예사롭지 않다.
◆훈훈한 정이 살아있는 먹방
"더 줘?" 사장님은 굳이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말하는 백종원에게 묵은지를 챙겨주며 자꾸만 묻는다. 사장님은 맛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꾸만 더 챙겨주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 백종원은 아이처럼 웃으며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 때마다 "더 주세요"라는 자막이 찍혔다. 하지만 계속 뭘 자꾸 챙겨주는 사장님이 부담스러웠던 백종원은 끝내 "맛없어요"라고 말하고는 "장사해야지 그걸 왜 싸주고 그래유"라고 했다. 제작진까지 함께 먹은 음식 가격보다 훨씬 많은 돈을 식탁 위에 슬쩍 놓으며 백종원은 "사장님 성격이 계산할 때 (묵은지 가격까지) 드리면 절대 안 받으실 성격"이라고 했다.
먹은 사람은 너무 맛있고 푸짐하게 먹어 더 돈을 챙겨주려 하고, 음식 만든 사람은 맛있게 먹었다는 사람에게 음식을 챙겨준다. 백종원이 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이 새로 하고 있는 '님아, 그 시장을 가오' 임실편이 보여주는 훈훈한 광경이다.
도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시골 음식점의 따듯한 점은 음식을 기다리며 방안에서 백종원이 추리해 본 갖가지 물건들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 구석에 놓인 목욕탕 의자, 한쪽 벽에 걸려 있는 비닐봉지 다발이 그렇다. 그 의자는 맨바닥에 앉는 게 불편하신 어르신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고, 비닐봉지는 남은 음식이나 반찬을 마음껏 싸가라고 놓아둔 것이다.
백종원은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는데, 그 반찬들은 몇 끼를 먹어도 될 만한 양이었다. 백종원은 "이게 파는 사람은 기분이 좋고 음식물 쓰레기도 안 남는데다, 가져가는 사람 또한 가족과 나눠먹고 입소문도 낼 수 있어 모두가 좋은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집의 음식에 담긴 사장님의 정성이다. 다슬기 양념장이라는 이 집의 대표음식은 사발 한가득 다슬기들이 채워져 있고 거기에 양념장을 더한 것이었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 보기만 해도 다슬기 하나하나를 씻고 끓여내고 알맹이만 바늘로 콕콕 집어 빼놓는 그 노동의 강도가 느껴진다. 실제로 새벽부터 나와서 밤 11시까지 일한다는 사장님은 그래도 손님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서 이 일을 힘들다 생각하지 않고 한다고 한다. 6일 만에 조회수가 144만회를 넘긴 이 방송에 덧붙여진 2천800개가 넘는 댓글 대부분은 "존경스럽다"는 반응이다. 노동 대비 가격이 터무니없는데도 저렇게 하시는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찡하다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지금껏 백종원이 여러 방송을 통해 먹방을 보여준 바 있지만,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그 색깔이 조금 다르다. 마치 '6시 내고향' 같은 훈훈한 분위기가 바로 그것인데, 그건 지역 특유의 정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백종원은 그간 음식 품평을 하던 방식을 벗어나 진짜 그곳의 음식을 즐기는 면모를 드러낸다. 이러니 더할 나위 없는 훈훈한 먹방이 그려진다. 그런데 왜 백종원은 갑자기 지역의 시장을 찾아 나선 것일까.
◆지역 활성화가 더 목적인 방송
분명한 건 이 방송은 맛집 탐방이나 음식점 홍보 같은 게 목적이 아니라는 거다. 그걸 명확히 알 수 있는 회차는 2회에 방송됐던 군위편이다. 군위에 있는 연탄 닭구이집에 들어간 백종원은 오늘 더 이상의 촬영은 이걸로 접는 게 좋겠다고 일찌감치 밝혔는데, 그건 '연탄불'을 쓰면 구이가 무조건 맛있는데 그걸 쓴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려 40년 간 연탄불 앞에서 그 가스와 연기를 마셔가며 고되게 일을 해왔다는 사장님 부부는 이제 힘들어서 그만 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이 일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가게는 잘 되지만 그게 너무나 힘들다는 걸 부부가 한 평생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러니 이 집이 백종원이 하는 방송을 타고 더 많은 손님들이 오는 걸 바랄 일이 없다. 사장님은 아내를 데리고 오겠다는 백종원에게 너무 머니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방송의 목적이 음식점 홍보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방속의 진짜 목적은 뭘까. 그건 지역의 시장들을 찾아갈 때마다 백종원이 마주하는 그 썰렁한 분위기에 담겨있다. 지역 소멸이라는, 해당 지역에 사는 분들이라면 위기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로 그 썰렁한 시장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지역 활성화가 이 방송의 목적이고, 그걸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시장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곳을 대표하는 맛집이 있다면 시장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맛집 하나가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소박한 상상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하는 인물이 백종원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포방터 시장이 순식간에 바뀌었던 걸 떠올려 보라. 물론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방송이 나간 그 시점에 포방터 시장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활력과 생기를 느낄 수 있지 않았던가.
◆개인방송으로 자유로워진 백종원
사실 이처럼 소외된 지역에 대한 백종원의 생각은 이미 SBS와 해왔던 일련의 방송들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이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아쉽게도 '맛남의 광장'은 코로나19로 인해 그 뜻을 펼칠 수가 없었고,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오래도록 방송되면서 패턴화되는 한계를 보였다. 그래서 제주도의 한 마을을 살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시도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만큼 지상파에서 하는 방송들은 일단 그 규모가 커서 그만큼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지녔다.
그래서 최근 백종원은 아예 자신의 개인방송으로, 그간 꿈꿔왔지만 여러 사정들 때문에 하지 못했던 걸 시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님아, 그 시장을 가오'는 그가 생각하는 많은 아이디어들 중 그 첫걸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방송팀이 움직일 필요가 없고 편성에 쫓길 이유도 없어 이 방송은 한껏 여유롭게 하려는 일들을 천천히 해나간다. 이 프로그램이 지상파와 달리 양념이 세지 않고 잘 우려낸 본연의 맛을 내는 건, 개인방송으로 얻어진 자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국의 시장을 다니며 노포를 소개하는 것에서 백종원의 행보는 어디로 갈 것인가.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최근 방탄소년단 진이 개인방송으로 시작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취중진담'에 출연한 백종원이 슬쩍 보여준 밑그림에서 앞으로 그의 행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막걸리를 마시다 생각난 듯 진이 백종원에게 전화해 술 만드는 거 어렵냐고 물은 게 일이 커져 전통주 명인을 찾아가 그걸 배우는 그 영상에서 "지역 살리기를 위해 지방에 내려와 있는데 정육점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이 그것이다. 그는 전국의 시장을 찾아다니다 이제 어딘가에(아마도 시장) 직접 정육점을 내려고 한다. 그걸 통해 그 지역을 살리는 걸 아마도 자신의 개인방송을 통해 보여주지 않을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전국의 골목식당을 살려 그 상권에 활기를 주려 했다면, 아마도 이 새로운 프로젝트는 백종원이 전국의 시장 및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직접 가게를 오픈하거나 그와 비슷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과연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어떤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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