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앞두고 송년회 날짜를 잡는 등으로 좀 들떠 있으나 많은 직장인에게는 비상이다. 대개 연말이 인사 철이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에게 승진(昇進)이라는 단어처럼 신경 쓰이는 말은 찾기 힘들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승진하면 당연한 것이나 동료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마음이 좀 불편하고 때로는 등에 칼이 꽂힌 듯한 충격과 쇼크를 느끼기도 한다.
흔히들 직장에 들어갈 때는 입사 동기를 같은 배를 타고 갈 운명 공동체로 여기기도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승진이 눈앞에 오면 동지가 아닌 경쟁자로 등장한다. 승진이란 자리는 제한적이고 경쟁자는 그 이상 되기 때문에 누군가는 앞서게 되고 누군가는 밀려나게 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장 생활은 '의자 차지하기 게임'에 비유할 수 있다. '의자 차지하기 게임'은 참가자보다 절대적으로 적은 의자를 가운데 놓고 참가자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의자 주위를 돈다. 그러다가 진행자의 호각이 울리면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곧장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장이 된다. 참가자들은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어깨와 엉덩이로 상대방을 밀치는 것은 기본이고 남이 차지한 의자를 뺏기도 한다. 때로는 이성과 체면은 물론 우정이고 의리고 뭐고 다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누구를 승진시켜야 하는 걸까. 대개 업무에서 성과와 실적이 뛰어난 사람을 승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틀린 답은 아니나, 능사도 아니다. 성과와 실적 기준은 사원에서 대리나 과장 정도까지의 초급 간부 승진에 적용하면 되지, 고위직 등 모든 분야의 승진 기준이 되어선 안 된다. 물론 승진은 보상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현 직위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승진시키는 것이 그렇지 아니한 경우보다는 낫긴 하겠지만, 오직 성과와 실적만을 전 분야의 승진 기준으로 적용할 경우 과장답지 않은 과장과 부장답지 않은 부장 또는 임원이 되기에는 2% 이상 모자라는 임원과, 사장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한 사람이 사장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흔히 스포츠 분야에서 선수 시절에는 탁월했으나 감독을 맡겼더니 너무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내는 경우를 지칭해 훌륭한 선수가 훌륭한 감독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단순히 한 분야의 성과만을 기준으로 조직의 관리로 승진시키면 이른바 '피터의 법칙'(Peters Principle)이 작동돼 조직 발전에 저해가 된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에 따르면 조직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좋은 실적을 내게 되면 실적에 대한 좋은 평가 때문에 승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승진한 지위에 오르게 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일에 대해서는 전혀 경험과 지식이 없는 신임이 돼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열심히 일을 익히고 배워서 그 일에 능숙해질 때 다시 또 승진하면서 다른 일을 맡게 되면 업무 능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결국 '승진이라는 것은 잘하던 일에서 못하는 새로운 일로 옮겨 가는 모순'이라는 게 피터의 설명이다.
따라서 승진을 시킬 때 '피터의 법칙'으로 인한 저주와 해독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현 직위에서의 성과는 좀 좋지 못하지만 상위 직급에서 더 잘해 낼 수 있는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는 미래 기준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 즉, 현 직위에서의 성과는 승진의 필요조건일 뿐이고, 상위 직위에서의 성과 창출 능력이 충분조건인 것이다. "공(功)을 세운 자에게는 상(賞)을 주고 능력(能力)이 있는 자에게는 자리를 주라"는 공자(孔子)의 말씀이 동서고금의 인사 원칙인 것이다.
엉뚱한 소리일 수 있으나, 사람마다 '승진할 때'라는 것이 있다면 그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어떤 직원이 실적이 좋은 것은 물론 높아진 안목과 업무에 대한 넘치는 의욕과 열정을 감당하지 못해 상사들이 일하는 것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아 힘들어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게 되면 그때가 바로 그 직원을 승진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위해 인사권자는 직원들 중 누가 마치 어린아이가 몸이 자라 상대적으로 작아진 옷에서 단추가 떨어지고 바지 재봉이 찢어지는 것 같은 현상을 보이는지 조직을 구석구석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 남은 저 의자는 과연 누가 차지할까? 오늘도 음악이 흐르며 '의자 차지하기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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