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광섭의 자명고 (自鳴鼓)] 북한 위험 관리 (3)과도한 군사력

윤광섭 前국방대안보대학원장,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윤광섭 前국방대안보대학원장, 예비역 육군소장, 정치학 박사

북한은 한‧미 간 연례적인 연합훈련에 대하여 여태껏 반응과는 사뭇 다른 고강도 무력도발을 강행하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탄도미사일과 포병사격으로 무력시위를 이어갈 뿐 아니라 조건부이긴 하지만 핵무기 사용을 연상시키는 위압적인 발언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특히 훈련명 '비질런트 스톰'을, 1991년 미국의 이라크 응징 작전 '데저트 스톰'과 연관시키면서 '정권 종말을 한‧미 핵 전략의 주요 목표로 정책화한 것'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자유민주국가의 군사력 사용 패턴과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북한 노동당과 군부는 한‧미 양국이 비핵화에 전혀 뜻이 없다는 판단 아래 계산된 위기 국면이 필요한 바, 소위 참수 작전의 상징과도 같은 F-35A/B가 훈련에 참가한 것은 좋은 구실이다.

수령 교조주의에 길들여진 당과 군은 충성심을 과시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4일간의 작전 일지를 공개한 것은 겉으로 내건 수사와 달리 더 이상 사태 악화를 원치 않는다는 일말의 두려움으로도 보인다. 우리 사회는 연일 고조되는 군사 긴장에 익숙해진 듯 오히려 냉담하다.

미사일 발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거론하며 '합리적 필요'를 넘어선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조소하는 분위기도 있다. 한미연합전력은 북한 군사력을 압도한다는 믿음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합훈련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허세를 부린 북한의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불씨가 확대될 수 있으며 북한 군사력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주범임에 틀림없다. 제8차 당대회에서 공언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비롯하여, 극초음속 및 변칙기동탄도미사일, 핵추진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군사강국형 5대 과제는 언젠가 성과를 낼 것이다.

◆인구 5% 이상의 병력을 유지

7차 핵실험 역시 전술핵무기 탄두에 관한 실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형화에 자신이 생기면 언제든 강행할 것이다. 단거리미사일을 전방으로 추진할 수 있고, 국제적 제재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장거리 순항미사일 역시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북한의 일정에 타협이란 여백은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재래식 전력은 한동안 핵‧미사일에 밀려 덜 주목을 받았다. 북한은 인구 5% 이상에 해당하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이렇게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대병력주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고 바람 잘 날 없다는 미국의 경우 상비군은 약 2.8% 정도다. 우리는 약 1.2% 수준이다.

예비 전력까지 포함하면 북한은 30%를 넘는 수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9년, 당장 전쟁에 돌입하기 위해 동원된 독일 병력은 인구의 약 4% 수준이었다. 전쟁이 한창일 때 약 13.8%까지 동원했다. 일본은 8.7%, 미국은 9.5% 수준이다. 치열한 참호전을 벌인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4.8%를 동원했다. 인구의 30%라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1990년대만 보더라도 병력증가율(약 16%)은 인구증가율(약 0.6~1.2%)을 25배나 상회한다. 장사정포, 방사포 등 북한군의 화력은 핵무기의 7, 8배는 족히 될 것이다. 군사비는 GDP의 약 24~30%를 투입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소 50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경제의 70%를 군사 부문으로 보기도 한다.

아무리 저렴한 인건비, 설비, 자체 생산 등으로 투자 효율이 우리보다 높다고 하더라도 당면한 재정난을 감안할 때 투자비는 곧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했으나, 지난해 1월 모두가 비핵화에 몰두해 있던 당시, 제8차 당대회 열병식에서 보란듯이 질적으로 개량화된 재래식 전력을 과시했다. 일각에서는 "행사용으로 위장된 부대로 야밤에 보인 허장성세"라고 일축하려 했다.

재래식 전력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해 경제 부문에 투입하려고 핵을 개발한다는 주장은 침묵해야 했다. 실인즉 북한은 '100시간 전투'의 명성을 얻은 걸프전에서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의 힘은 군력(軍力)에서 나온다.

그간 소원해 있던 러시아와 '신조약'을 체결하여 대공미사일, 대공레이더, 전투기, T-80/90 전차, 무인정찰기, 군사위성 정보 제공 등에 협의하고, 2001년 7월 김정일은 이와 관련된 시설을 직접 방문하였다. 주종을 이루는 노후화된 구소련제 무기체계를 교체하는 데 집중했다. 추정컨대 지난 열병식에서 선보인 장비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조선 국방력은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비싼 대가로 이루어왔다"고 자찬한다. 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나의 힘은 군력(軍力)에서 나온다"면서 "미사일에 돈을 쓸 것인지, 먹는 문제에 쓸 것인지 고민했는데, 미사일 쪽에 쓰길 잘 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군사우선주의는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김일성으로부터 내려온 전통이며 김정은 시대에도 불변이다.

지난 8월 북한은 정부의 '담대한 구상'에 대하여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짝과 바꾸어 보겠다는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스스로 군사력을 '혁명무력'이라고 하듯이 체제 존립의 근거이자 오늘날 유일한 돌파구인 '한국 접수의 결정적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 흔한 '억제'라는 말도 최근 들어서야 사용하고 있다.

북한의 기본 전략은 주어진 정세를 만조기, 간조기, 퇴조기로 구분하여 우리가 '평화'를 외치면 이를 만조기로 가는 호기로 인식하며 공작한다. 결정적인 시기가 조성됐다고 판단하면 단기결전으로 승부를 내려 할 것이다. 핵은 미 증원군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며, 기습은 전력비를 5~7배까지 역전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필수 선택이 된다. 만약 우리가 기습을 허용한다면 반전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선제 조치를 위한 촘촘한 대북 감시가 요구된다. 북한은 핵무력 법제화 이후 선택지가 더 넓어졌다. 시공간적으로 한미연합 전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노릴 것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과정도 눈여겨봤을 것이다.

서해 5도(NLL)와 같은 취약지역을 기습 점령하여 인질화하고 핵무기로 기정사실화하면서 필요한 협상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와 군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고, 만약 북한이 오판한다면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고 중국 등 주변국에도 주입시켜야 한다.

군사력 자체가 불안정의 원인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의 경우 '체제의 비효율성'과 '북한판 교조주의'가 결합되면 '과도한 군사력'은 합리적 통제를 넘어설 수 있다. 무엇보다 북한 노동당은 애지중지해 온 '혁명무력'을 끌어안고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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