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44> 축복의 시간

박종욱 책숲길도서관(범어도서관 분관) 사서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이명희 지음/ 에트르 펴냄)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이명희 지음/ 에트르 펴냄)

사서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 "책 많이 보시겠어요?"이다. 그때 "아니요, 책을 많이 만져요"가 보통 하는 대답이다. 나도 은행원이 돈을 많이 만지는 직업이지 돈을 많이 쓰는 직업이 아니라는 비유를 하며, 책을 많이 읽는다는 긍정적 편견을 부정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사실 사서들은 책…. 많이 본다.

대출이 잦은 책은 '요즘 이 책 잘 나가네' 하며 넘겨보고, 생소한 주제를 다룬 책은 '무슨 내용을 다루나?'하고 들춰본다. 표지나 제목이 눈길을 끄는 경우 '이런 책도 있네'하며 직업상 내용 파악을 위해서라도 책을 한번 훑어보게 된다.

그러다보면, 우연히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를 발견하기도 하고, 좋은 책과의 만남을 얻어 퇴근길 지하철에서 '독서의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책들 중에서도, '와, 이건 올해의 책이다!'하고 감탄하기도 하는데, 얼마 전 한 이용자가 신청했던 희망도서에서 나만의 올해의 책을 발견했다. 제목은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다.

작가의 아이는 세상에 3개월 일찍 나와 편마비 증세를 가지게 되는데, 네 살 때는 원인불명의 뇌손상으로 사지마비 진단을 받고 시력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중증장애아 엄마가 된 후의 체험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나는 시한부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같이 슬픈 이야기를 접하면 마음이 아려 되도록 피하는 편인데, 이 책의 제목이 '우리 힘내자!'라거나,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다'라는 느낌의 제목이었다면 아마 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애아에게 '마이 스트레인지 보이', "이상한 애"라니!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일지 호기심에 펼쳐봤다가 책을 보는 내내 더 슬퍼지지는 않을까, 가슴 조리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못했다.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읽은 후, 슬픔인지 기쁨인지 아니면 희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내 마음에 아로새기듯 한 글자 한 글자 집중하며 마침내 맞이한 완벽한 결말, 가슴에 남아있는 여운, 독서의 희열을 만끽한 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다보면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좋은 책을 만나고, 그 책을 통해 지혜와 용기, 위로와 희열을 얻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런 순간이 사서의 직업적 축복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그런 '축복받은 사서'가 여러분에게 그 축복을 드리려 기다리고 있다. 바로 가까운 도서관에서.

박종욱 책숲길도서관(범어도서관 분관) 사서
박종욱 책숲길도서관(범어도서관 분관) 사서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