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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문학동네 펴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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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작가 초롱(이미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중 작가 초롱(이미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이미상 작가가 첫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을 출간했다. 2018년 웹진 '비유'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날카롭게 고발하면서도, 특유의 유머를 활용해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장을 자주 구사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표제작을 비롯해 '하긴', '그친구' 등 8편이 담겼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하긴'은 이미상의 데뷔작이자,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다. 이른바 '학출(학생운동 출신)' 586세대의 위선을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화자인 '나'는 운동권 출신 엘리트로, 현재 언론사에 재직 중이다. '영원한 동지이자 연인'인 아내 '규', 딸 '김보미나래'와 중산층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나'는 딸에게 '작은 소반에 앉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전수하는 것'을 꿈꾸지만, 맘처럼 되지 않는다. 그의 관점에서 보미나래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는 초등학생 고학년 딸이 암기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암기를 위한 노래'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아내에게 물으니 아내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약간 얼굴을 붉히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우리는 그런 종자가 아니다."

특별한 딸을 만들고 싶은 부모의 노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학출' 친구의 입시 컨설팅을 받은 부부는 대학 입시를 앞둔 딸을 중퇴시킨다. 이후 미국 버지니아주 에코 공동체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공동체 생활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청소년영화제에 출품해 수상한 뒤 '경기권 사회학과'라도 넣어보기 위한 시도였다. 물론 영상 편집은 아빠의 몫.

미국에서 1년 뒤 돌아온 보미나래는 "제 몸의 세 배쯤 되는 히피풍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딸이 찍어온 영상은 쓸 만한 게 없었다. 이래저래 갑갑하던 차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 '나'는 청천벽력 같은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나래 지금 병원이야. 강북삼성, 산부인과."

친구들과 함께 헐레벌떡 달려온 '나'는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를 본다. 건강한 남아. 피부가 검은 아기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친구들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한다. 딸이 미국에서 약혼을 했다며, 조지타운 로스쿨에 다니고 있는 '사위될 놈'이 졸업하고 연방정부에서 일할 예정이라는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소설은 소위 '배운 세대'로 평등과 차별 철폐 같은 입바른 소리를 해온 '나'의 내면을 거침없이 파헤친다. 그토록 부르짖던 이념을 몸소 실천해야 할 때가 올 때, 선민의식과 학벌주의 같은 민낯을 드러내는 인간군상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하긴 하는 남자'는 아내 '규'가 붙여준 별명이다. 고지식함과 불성실함 사이에서 하긴 하는 남자. '내 문제'가 아니라면 하긴, 하는 남자.

소설집에 수록된 '그친구'와 '이중 작가 초롱'은 '하긴'과 연작 성격의 단편소설이다. 이어진 다른 작품들에서도 작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배제되고 추방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이미상은 '작가의 말'을 통해 "문학을 너무 크고 위대하게 생각하면 글쓰기가 무서워진다"며 "그런데 글은 그런 무서운 게 아닌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나는 글이 그래도 친구 같다"고 말했다. 356쪽, 1만5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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