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 경산 상엿집과 '쓸모 없음의 쓸모'

쓸모없다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김진만 기자경북부
김진만 기자경북부

중국 고전 '장자'의 인간세(人間世)편 4장에는 아주 크지만 목재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아 벌목되지 않고 장수를 누리는 상수리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별 쓸모없는 것(산목·散木)의 커다란 쓰임(無用之用)을 역설한다.

(사)나라얼연구소가 지난 18, 19일 양일간 주최한 제9회 한국전통 상례문화 전승 및 세계화 방안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조원경 이사장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문화재 제266호) '경산 상엿집과 관련 문서'를 지키고 보존하는 이 연구소를 산목이라고 했다.

그는 "이 연구소가 산목처럼 버려진 우리 문화유산인 상엿집과 관련 문서들을 소중하게 지키고 살려 냈더니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에도 2천여 점의 상례문화 자료를 더 수집했다. 쓸모없는 것이 쓸모있게 됐다. 그런데 문화재로 지정된 후 국가에서 잘 지켜주리라고 믿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이 없어졌다. 주인이 없으니 어느 쪽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라얼연구소는 2007년 창립 이후 조상들의 혼과 공동체의 삶이 담겨져 있는 전통 상례 문화를 지키고, 죽음의 문화를 통해 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성찰해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경산 상엿집 보존과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경산 상엿집을 중심으로 추진중인 한국전통 민속테마공원 조성에 힘쓰고 있다.

특히 그는 "잘나고 쓸모있는 나무 '문목(文木)'들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상엿집 등의 가치를 평가하고 활용 방안인 한국전통 민속테마공원 조성에 콘텐츠가 부족하다느니 이런 저런 해석을 하고 있다"며 문목들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러면서 "버려진 것을 버려 달라. 산목들이 더 오래 지킬 것"이라고 역설했다.

상엿집 보존과 추진중인 한국전통 민속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또 나랏돈이 들어가니 사업의 적정성이나 효율성 등을 심도있게 따져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건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련 공무원들이나 위원들이 혹여 장자의 인간세에 나오는 주관적인 '쓸모'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해석하고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이 있다.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다 생각하는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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