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문화의 가치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오늘날 우리는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아마도 문화가 우리 사회에 가치를 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입장에 따라 이러한 문화의 가치는 다르게 인식된다. 영국의 문화정책 싱크탱크 데모스(Demos)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이며, 현재 런던 킹스 칼리지의 교수인 존 홀든(John Holden)은 공적 지원으로 유지되는 문화의 가치를 '본질적 가치', '도구적 가치', 그리고 '제도적 가치' 또는 '공공적 가치'가 각각의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또 이 가치 삼각형에 시민, 정치가와 정책입안자, 그리고 문화전문가가 각 꼭짓점을 이루는 이해관계자 삼각형을 겹치게 배치해 문화적 가치와 이해관계자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시민들은 본질적 가치에, 정치가나 정책입안자들은 도구적 가치에, 그리고 문화전문가들은 제도적 가치, 다른 말로 공공적 가치에 관심을 가진다고 봤다.

이 삼각형에서 본질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는 시민들은 맨 위 꼭짓점에 놓여있으며, 문화를 통하여 지적이며 정서적인 자극을 원한다. 예를 들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에서 비애감을 느낀다거나 고흐의 그림에서 서사적 드라마를 상상하는 등의 주관적인 것들이다. 이러한 가치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것으로, 측정도 어렵기 때문에 수치가 아닌 영향력이나 잠재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삼각형의 아래 오른쪽 꼭짓점에 위치하는 정치가와 정책입안자들은 문화를 사회적 도구로 간주해 그 안에서 가치를 찾는다. 즉 문화의 경제유발효과나 관광진흥효과, 아니면 학습의 도구로서 창의성을 자극하는 효과, 그 외에 복지적 측면에서 문화의 역할 등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의 수치적 결과에 너무 관점을 둬서는 안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결과와 문화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 남은 삼각형의 아래 왼쪽의 꼭짓점은 문화전문가들에 의해 부여되는 가치인데, 문화기관의 전문가들이 지지하는 이 가치는 문화가 보다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제도적 가치다. 이는 정치가와 정책입안자들이 요구하는 특정 사회적 가치나 시민들이 요구하는 주관적인 가치를 아우르면서 전체 사회가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도록 하는 '공공적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문화전문가들의 역할은 문화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매개자이기도 하지만 시민들과의 관계를 통해 공공적 가치의 창조자 역할도 해야 한다고 홀든은 말하고 있다. 문화전문가가 소속된 기관들은 공공의 영역에서 시민들에 대한 책임을 지며 신뢰성, 투명성, 그리고 공평성이 그들의 주된 가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홀든은 이 세 가지 가치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 보고 있다. 미술관 경험을 예로 들면 미술관에 간 학생이 어떤 작품을 보고 '좋다', '아름답다'라는 등의 정서적이거나 미적인 경험을 통해 '본질적 가치'를 느끼고, 거기서 얻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성적을 올리게 되면 '도구적 가치'가 구현되는 것이다. 또 미술관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뀐다든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감각이 강화된다면 '공공적 가치'가 달성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 삼각형의 모습은 어떠한가? 공적 재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따라 문화기관의 전문가들이 정치가 또는 정책입안자와 너무 가깝지는 않은가? 어느 두 쪽이 너무 가까워져 정삼각형의 모양이 깨지게 되면 문화의 세 가지 가치 중 두 가지만 남게 된다. 만약 문화정책이 정치가 또는 정책입안자와 문화전문가들 사이만의 닫힌 대화가 돼버리면 시민들은 적극적인 문화참여자가 아니라 단순한 문화서비스의 수혜자로만 대상화될 수 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