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 Class1'(이하 약한 영웅)에 대한 반응이 심상찮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지만 그 액션의 강도나 몰입감은 결코 약하지 않다. 무엇이 이런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걸까.
◆학원 액션물이라는 장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 연시은(박지훈). 수업 중엔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누군가 말 시키는 것조차 귀찮아 귀에 리시버를 꽂고 다니는 이 모범생에게 반 일진들이 심기를 건드린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자신이 공부하는 걸 방해하는 건 그 누구라도 참지 못하는 연시은은 결국 저들에게 일격을 가하고, 그 일은 그를 더 살벌한 폭력의 세계 속으로 빠뜨린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은 웹툰 원작이 그러하듯이 익숙한 '학원 액션물'의 공식을 따라간다. 하지만 이 작품만이 가진 차별점은 바로 연시은이라는 인물이다. 전혀 싸움을 못할 것 같은 '약한' 이미지(이름도 연시은이다)지만 그는 마치 공부를 통해 배웠던 물리 법칙이나 심리학 등을 싸움의 전략으로 이용한다. 즉, 무조건 주먹질을 날리는 그런 싸움이 아니라, 전략을 짜서 싸우는 것. 예를 들어 첫 회에 영빈(김수겸)에게 일격을 가할 때 연시은은 속으로 뉴턴 제1법칙을 읊조린다. '뉴턴 제 1법칙. 힘은 가속도와 질량에 비례한다. 물체의 원심력을 이용해 타격 지점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머릿속 계산에 의한 전략을 바탕으로 두꺼운 하드커버의 책을 들고 크게 원심력을 그려 영빈을 가격하는 연시은의 액션은 그래서 여타의 액션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90년대에 청춘의 시기를 보냈던 이들이라면 이 작품에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같은 연재만화가 떠오를 것이고, 권상우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가 떠오를 게다. 그만큼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물은 그 연원이 깊다. 웹툰이 본격화되면서는 양적으로도 늘어나서 '학원 액션물'이라는 장르로 분류되기도 했다.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명한 '외모지상주의' 같은 웹툰이 대표적이다. '약한 영웅'도 그 계보의 한 획을 그은 웹툰이 원작이다. 2018년부터 연재를 시작해 현재까지도 시즌3가 연재되고 있다.
학원 액션물이 이토록 인기를 끌게 된 건 이 장르가 가진 특징이 강력한 극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 같은 소재 자체가 자극적이지만, '약한 영웅'이 그러하듯이 학원 액션물의 학교 폭력은 그 수위가 거의 범죄수준에 다다른다. 모범생 연시은에게 시험을 못 보게 하기 위해 패치형 마약을 목덜미에 몰래 붙인다거나, 이런 사실을 알아채고는 연시은이 영빈에게 가하는 폭력은 상상 이상이다. 즉, 이 액션이 갖는 자극 수위는 웬만한 범죄스릴러 수준이다. 그런데 이 폭력 속에 있는 이들이 고등학생이라는 점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졸이게 만들고 때로는 분노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카타르시스도 더 강력하게 돌아오게 만든다.
한국의 액션이 서구의 근육질 마초맨들의 액션보다 더 강력하게 느껴지는 건, 거기에 감정이 얹어져 있어서다. 주먹질 하나를 해도 꾹꾹 채워진 감정들은 더 큰 폭발력을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학원 액션물만큼 감정이 절절해지는 액션이 없다. 거기에는 사춘기 아이들의 예민한 감성과, 처음으로 당하는 현실적 폭력 앞에 축적되는 분노, 좌절 같은 것들이 뒤엉켜 있다. '약한 영웅'의 액션은 그래서 이러한 감정의 폭발이 담겨 훨씬 강력한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재미 이면에 담긴 어른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그렇다고 '약한 영웅'이 그저 자극적인 액션물에 머무는 작품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이 작품은 재미는 있어도 만만찮은 비판에 직면했을 게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재미 이면에 비판의식 또한 담고 있다. 그것은 이러한 폭력적인 현실 속에 서 있는 아이들을 그 누구도 보살피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이 드라마에는 가출팸 청소년들을 이용해 마약부터 도박, 불법 사채업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길수(나철)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사실상 아이들을 약취하는 이 어른은 돈에 미친 자이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 때문에 그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아이들은 범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다. 그저 비행청소년으로 치부되며 그 누구도 아이들을 구하려 하지 않는 사회. 연시은은 어쩌다 길수의 조직과 대적하게 되고 다른 어른들도 하지 못한 아이들을 그 소굴로부터 구해내는 '영웅'이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연시은과 함께 이 일을 해낸 친구 안수호(최현욱)나 오범석(홍경) 모두 전혀 부모 같은 어른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는 점이다. 연시은의 부모는 사실상 아들을 방치한다. 유명한 학원 일타강사인 엄마는 "알아서 한다"며 전혀 아들을 돌보지 않고, 코치인 아버지는 전지훈련이다 뭐다 하면서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늘 홀로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연시은의 눈빛은 그래서 아무런 행복감이나 희망 같은 걸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텅 비어있다.
안수호는 하나뿐인 할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기 바쁘고 그래서 학교에서는 대부분 잠을 잔다. 한편, 집단 괴롭힘을 당해 전학 왔다가 또다시 그 괴롭힘을 당할 처지에 놓인 오범석(홍경)은 부모의 사랑 자체를 받아본 적이 없어 자존감이 바닥이다. 아버지가 유명한 국회의원이지만 오범석은 그의 친자가 아니다. 이미지 세탁을 위해 입양했을 뿐, 아버지는 그를 정치적인 쇼윈도 부자 관계로만 이용하려고 한다.
이들 모두에게 보호막이 되어주는 어른은 없다. 물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학교 선생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폭력의 이면에 비춰지는 어른 없는 사회는 그래서 이 작품 속 처절한 아이들의 비극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지목한다.
◆웨이브가 이런 드라마를?
사실 '약한 영웅'은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웨이브라는 플랫폼이 그간 가졌던 이미지와는 사뭇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물론 HBO와 제휴해 자극적이지만 완성도도 높은 작품들이 적지 않은 웨이브는 '순한 맛' 콘텐츠만을 가진 OTT는 아니다. 다만 지상파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들이 대거 전면에 나와 있어 웨이브의 색깔이 순한 이미지로 채색되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약한 영웅'의 강렬한 색깔은 웨이브라는 OTT가 훨씬 다양한 콘텐츠들을 세우고 있다는 걸 드러내준다. KBS 주말드라마 같은 기성세대들이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있지만 '약한 영웅' 같은 젊은 세대들이 열광할 다소 자극적인 콘텐츠도 존재한다는 것. 그러고 보면 작년에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됐던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같은 본격 정치를 적나라하게 다룬 작품의 파격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약한 영웅'은 또한 그간 지상파가 다소 순화해서 그리곤 하던 청소년 소재 드라마의 틀 밖으로 빠져나온 작품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인간수업'이나 시즌 오리지널 '소년비행'을 잇는 작품으로도 읽힌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OTT 오리지널 시리즈로 그간 지상파 같은 플랫폼에서는 다뤄질 수 없었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19금 수위로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 그건 보다 자극적인 서사를 담고픈 욕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너무 미화되고 순화되어 판타지화하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보다 적나라하게 직시하게 하는 면이 있다.
'학원 액션물'은 OTT로 소개되는 작품으로서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주목받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미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좀비 버전의 '학원 액션물'이 글로벌 반향을 일으켰던 걸 떠올려보라. 감정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액션의 강도. '학원 액션물'은 어쩌면 K액션의 중요한 한 경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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