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 자라온 동료들이 있다.
처음 예술을 시작했을 때 오디션장에서 마주친 그 선배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분의 행보를 지켜보고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 걸으며 어깨너머로 배우고 또 많은 일들을 함께하며 성장했다.
선배는 예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배울 점이 넘쳤다. 놀라운 통찰력과 칼 같은 프로덕션 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냉철한 이성적인 모습과 결정력 뒤엔 따스하고 온화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를 포함한 여러 동료들이 모였고, 그 선배의 그늘 아래 따스한 온실이 생겼다.
좋았다. 좋은 사람 곁엔 좋은 사람이 모이듯이 예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결이 맞는 동료들과 연대는 느슨하면서도 견고했고, 함께 하는 작업은 늘 설레는 성장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선배가 우리를 감싸안기만 하며 키워온 것은 아니다. 늘 이 느슨한 연대 속에서 계속 남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만약 도태된다면 친하게 지낼 순 있지만 일을 같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기회를 주거나 무언가를 알려주기보단,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능력치보다 살짝 어려운 난이도의 일을 맡기고는 스스로 깨우치고 성장하길 기대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으면 한 번씩 스윽 나타나 힌트를 주고는 또 사라지고 하는 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참 도인 같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따듯한 온실 속 생활은 갑자기 끝이 났다. 최근 잇달아 연출한 두 작품, 방천 골목 오페라 축제의 '사랑의 묘약'과 달서문화재단의 축제 폐막작의 음악극 '청춘, 그 찬란한 날들'을 마치고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온실에서 나가라는 말이었다. 그 분 성격에 언젠가는 날 밀어내시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자신의 그늘에 있는 것이 안락하고 안전하긴 하지만, 또 그만큼 예술가에게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뜻한 온실을 벗어나 냉혹한 광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는 뜻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인정해주시는 듯해 기쁘기도 하면서 걱정도 되고,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 이젠 온실은 없다.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가야 한다.
이제 올해 바쁘고 중요한 일정들은 거의 정리가 된 지금, 이제는 어디로 어떠한 길을 갈지 깊게 고민을 해 볼 예정이다.
그동안은 온실 속에서, 그분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에서 내실을 잘 다졌으니, 앞으론 여기저기를 떠돌기도 하고, 찾아다니며 나만의 색과 향을 좀 더 진하게 하는 날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따뜻한 온실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알에서 깨어난 작은 새도 언젠가 둥지를 떠나지 않는가. 나도 어설픈 날갯짓을 시작해보려 한다.
댓글 많은 뉴스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원희룡 "대통령 집무실 이전, 내가 최초로 제안"…민주당 주장 반박
한동훈 "尹 대통령 사과, 중요한 것은 속도감 있는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