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편리하고 세련된 도시에 살면서도 창문으로는 강이나 산, 숲이 보이길 원한다. 역세권처럼 강세권, 산세권, 숲세권 아파트는 인기가 높다. 여기에 더해 물이 흐르고, 새가 나는 자연 가까이에 산책로, 자전거길, 놀이터, 체육시설이 있다면 만족감은 더욱 상승한다.
최근 대구 금호강 인근에 체육, 관광, 휴식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구시는 '금호강 르네상스'라는 부흥 계획을 발표했고, 북구청은 사서동 일대에 파크골프장과 리틀야구장을 짓는 공사를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가치를 높인다는 명목에다 친환경, 생태, 녹색이라는 수식어까지 챙겨 붙였다. 환경영향평가 절차도 거쳤으니, 분명 환경친화적 건설공사가 될 것이라 약속한다. 대구환경청도 허가해 주었다.
분지 지형의 대구에서 강은 이미 큰 유익을 제공하고 있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도로와 축구장, 농구장 등이 즐비하다. 강변에 지어진 파크골프장만 22곳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강은 한여름 도심의 온도를 낮추고 바람길을 만들어 준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무정형으로 우거진 덤불숲은 도시의 원시미를 더하고, 단풍과 낙엽 속에서 분주히 오가는 새들의 지저귐은 회색빛 도시에 생기를 더해 준다.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 위에서 물새들이 기운차게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모습은 진귀한 구경거리다. 도심 속에서도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게 해주는 금호강이 있다는 것은 대구 시민들에겐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금호강은 야생동물들이 간신히 마련한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대구환경운동연합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금호강에는 확인된 것만 150여 종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중엔 수달, 삵, 얼룩새코미꾸리, 남생이, 고니, 흰목물떼새, 붉은배새매, 새호리기, 새매 등 멸종위기종이 9종이나 있으며 천연기념물도 7종이 발견되었다.
잠시의 편리와 당장의 만족감을 위해 야생동물의 집을 오직 인간만이 놀고 즐길 공간으로 개조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 사서동 파크골프장 부지 작업이 시작되면서 벌써 수달의 서식지는 파괴되고 있다.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죽어 없어진다면, 살 곳과 먹이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인간들과 대치한다면, 성가신 동물들은 포획하여 없애 버린다면, 가끔 동물원과 동물체험시설에서 갇혀 있는 동물들을 구경한다면 정녕 우리는 행복할까?
금호강에 터 잡은 150여 종의 야생동물은 돈도 없고 투표권도 없다. 구청에 전화를 걸어 공사를 멈춰 달라고 항의하지도, 건설폐기물과 시멘트를 들이붓지 말라고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하지도, 금호강야생동물연합회를 만들어 철거 반대 투쟁을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금호강에 살고 있다. 치워 버리고 덮어 버려도 되는 무생물이 아니다. 죽기를 싫어 하고 살고 싶어 하는 인간과 같은 생명체들이다.
동물보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동물들을 그 습성대로 살도록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건설공사를 멈추고, 강은 강대로 흐르고 숲은 숲대로 우거지고 동물들도 주어진 생을 습성대로 살다 가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들이 공존하는 도시를 만드는 데 세금을 쓴다면 대구시와 북구청은 두고 두고 칭송받지 않겠는가?
인간이 참으로 위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연을 개조할 위력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것을 쓰지 않고도 만족할 수 있을 때일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야생의 거주민들을 내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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