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경제에선 말 그대로 억만장자인 권력자들에게 무료로 뭔가를 굉장히 대접한다는 것, 우리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탤런트(능력치)를 갖고 있어 모두 백만장자라는 것, 이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54)은 최근 국내에 재출간된 첫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인플루엔셜, 전 2권)이란 제목에 두 가지 메시지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기득권층엔 한없이 친절하지만, 재능과 성실한 노력에는 등을 돌리는 사회 이면을 꼬집은 것이다.
삼성행복대상 등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이같이 말하며 더 중요한 가치는 후자에 있다고 강조했다.
2007년 출간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파친코'(2017), 그가 현재 집필 중인 세 번째 장편 '아메리칸 학원'과 함께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으로 불린다.
1990년대 미국 명문대를 졸업한 한국계 이민 2세대 여성 케이시 한이 가족 내 간섭으로 갈등을 겪고, 사회에서는 인종과 돈에 의해 평가되는 현실에 부딪히는 이야기다. 작가의 자전적인 경험을 녹여 세대·계층·남녀 간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파친코' 등 소설 첫 문장에 주제를 담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이 작품에도 '능력은 저주일 수 있다'는 강렬한 문장을 첫 줄에 내놓았다.
이민진은 "수학이나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넌 과학자,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얘기하는데, 이 사람의 능력치일 뿐 사실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며 "숙명처럼 당연히 이 길을 가야 한다면, 능력 자체가 저주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에서는 돈과 성에 대한 가치관이 케이시와 친구 엘라 등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민진은 "남녀 등장인물을 구상할 때 돈과 성에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먼저 정해놓고 캐릭터를 설정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회경제적 계급 사회와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인간욕구 위계이론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했다. 매슬로 이론은 인간 욕구를 생리(생존)→안전→애정(사랑)→자기존중→자아실현 5단계로 구분한다.
이민진은 "집필할 땐 케이시가 얼마나 자아실현을 하고자 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며 "그런 욕구가 있어도 생존이 너무나도 절실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또 돈과 성이 각 단계와 서로 연관돼 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도 했다.
1995년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11년, '파친코'를 30년에 걸쳐 집필했다.
그는 "성인군자라기보다 좀 바보스러운 면이 있고 고집불통"이라며 "저는 평생 다작을 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작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사회적인 지위, 권력, 돈은 필요 없다고 포기한 사람인데, 지금 자연스럽게 따라온 건 너무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 동기 부여가 되는 원천으로는 19세기 소설을 꼽았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필하지 않고 기자처럼 기록하거나 논문을 작성하듯 주장을 먼저 내놓는 것도, 이 작품과 '파친코'에서 한국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도 그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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