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생활에 가까웠던 5년, 겨우 이런 그림 그리려고 재판 치렀냐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더 진지하게 작업에 매진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미술을 사랑하는 가수에서 화가로, 제대로 판을 뒤집은 셈이 됐습니다."
가수 겸 화가, 문필가로 활동해온 조영남의 예술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조영남은 외계인이다'가 대구에서 열리고 있다.
1968년 팝송 '딜라일라'로 가요계에 데뷔한 조영남은 3년간 독자적으로 미술을 익혀 1973년 서울 인사동 한국화랑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50여 회의 개인전, 600여 회의 단체 기획전에 참여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가 2020년 대법원으로부터 대작사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처음 선보이는 전시다. 그를 대표하는 화투 작품과 세계 근·현대 명화를 패러디한 작품을 비롯해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 '예스터데이' 등 그가 펴낸 책도 함께 선보인다.
신작 '노인과 에펠탑'은 후줄근한 자신의 모습과 세련되고 튼튼한 에펠탑을 대비시킨 것이 눈에 띈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나이듦에 대한 얘기를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그가 쓴 책 '시인 이상과 5명의 아해들'을 소재로, 소쿠리, 노끈 등 입체적 오브제를 콜라주해 만든 작품에서도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지난 28일 전시장을 찾은 작가는 "대구는 이인성, 정점식 등 유명한 화가들을 키워낸,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곳이다. 예술에 유서 깊은 지역이라 창피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늘 전시하고 싶었던 곳이어서 기쁜 마음이 크다"고 했다.
그는 재판을 치룬 5년간에도 쉬지 않고 부단히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일체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면서, 그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판이 잘 끝나건 못 끝나건 내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를 중단할 수 없었죠. 내 딴에는 오늘을 위해 열심히 작업에 매진했습니다. 이게 내 그림의 전부입니다. 그림이 신통찮다면 내 잘못이 아니라, 음악에 비해 그림 DNA를 많이 못 물려준 부모님을 탓할 수밖에요."
이어 그는 "이번 전시는 내가 뭘 하고 싶어하는지, 뭘 생각하는지 직접 표현하고 보여주려는 의지의 표상"이라며 "많은 분이 '이 사람이 진심으로 그림에 임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줬으면 한다. 나로서는 처절하게 해온 결과물들"이라고 말했다.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수석큐레이터는 "조영남의 그림은 화투나 바둑, 태극기 등 극히 예술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네 인생사와 아주 친근한 소재들만을 골라 작품화시킨다"며 "다양한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온 그의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대백프라자 10층 특별전시장에서 12월 4일까지, 갤러리동원 앞산점에서 1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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