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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178>신선 같은 생활을 누리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수선화와 불수감

미술사 연구자

김용진(1878-1968),
김용진(1878-1968), '수선과 불수감', 1959년(82세), 종이에 채색, 16.7×53.1㎝, 순천대학교박물관 소장

쓱쓱 스케치하듯 스스럼없는 필치로 수선화와 불수감(佛手柑)을 그렸다. 불수감은 불수감나무 열매로 부처님 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불수, 불수귤로도 불리는 감귤류의 아열대과일이다. 영어로도 붓다스 핸드(buddha's hand)다. 불수감의 '불(佛)'이 '복(福)'과 중국어 발음이 같아 복의 의미로 기명절지화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 뜻은 알려져 있었겠지만 이 작품이 그려진 1950년대에 실물을 본 사람은 드물었을 테고, 조선시대부터 귀하게 여겨진 수선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인들은 선녀로 비유한 수선화를 글로만 접했을 뿐 19세기가 되어서야 중국에서 들여온 귀한 수선화를 직접 보았다. 추사 김정희는 수선화를 각별히 사랑해 매화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며 시로 읊고 그림으로 그렸다.

조선 문인들의 수선화 사랑이 이어진 위에 불수감의 복을 바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는 부채그림 '수선과 불수감'은 영운(潁雲), 구룡산인(九龍山人)으로 호를 쓴 김용진의 작품이다. 김용진은 할아버지가 영의정을 지냈고 어머니가 흥선대원군의 외손녀인 세도가문으로 젊을 때부터 미술에 취미가 많았다. 그가 청나라 말 상해에서 유행한 대사의(大寫意) 화풍 사군자와 화훼를 즐겨 그린 것은 방명(方洺)에게 배운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안휘성 출신인 방명이 일본에 머물다 1926년 우리나라에 왔을 때다. 중국인 화가에게 직접 그림을 배운 특이한 예다. 제화는 이렇다.

불속즉선골(不俗卽仙骨)/ 불속(不俗)은 신선의 풍골이요

다정시불심(多情是佛心)/ 다정(多情)은 부처의 마음이라

화위(畵爲) 송파대인(松波大人) 청불(淸拂) 김용진(金容鎭) 팔이병수(八二病叟)/ 송파대인께서 맑게 부채질하시기 바라며 그리다. 팔십 둘 병든 노인 김용진

이 두 구절의 핵심인 선(仙)과 불(佛)을 수선화와 불수감으로 그렸다. 신선 같은 생활을 누리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언제 들어도 반가운 말을 부채그림으로 그리고 이 부채의 청풍(淸風)으로 여름의 더위도, 속세의 먼지도 모두 날려 보내 주변을 맑게 하시라고 했다.

부채까지 온전한 성선(成扇)으로 보존돼 생활 속의 실용품이자 미술품인 합죽선의 운치와 풍류가 더욱 실감난다. 우리나라 합죽선은 선면의 종이 외에는 부챗살과 갓대 장식 등 주재료가 모두 대나무여서 가볍고 견고한 것은 물론 재료의 통일감이 갖는 공예품으로서의 일관성과 자연스러움이 뛰어나다. 대나무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서민적인 재료인데다 곧고 굳은 대나무에 부여된 군자의 상징성 또한 미술품으로서 부채의 격조와 품위에 일조한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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