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 장애인의 날] 간이 경사로 통행…내겐 너무 높은 너

올해부터 면적 75㎡ 이상 건물 경사로 설치 의무화
지자체 경사로 없는 구식 건물에 간이 경사로 설치 진행
경사로 내구성 약해 파손 빈번, 길이도 짧아 기울기 가팔라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카페 앞에 설치된 장애인을 위한 간이 경사로. 한소연 수습기자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카페 앞에 설치된 장애인을 위한 간이 경사로. 한소연 수습기자

"넘어질까 조마조마했습니다."

지체장애인 A(59) 씨는 얼마 전 휠체어를 타고 대구 중구의 한 빵집을 찾았다가 애를 먹었다. 빵집 출입구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오를 수 있도록 간이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지만 기울기가 너무 가팔랐다.

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A씨는 휠체어 바퀴를 힘껏 밀지 못했고, 급경사에 휠체어가 밀려나길 반복했다. 결국 직원의 도움으로 받고서야 A씨는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장애인 이동 편의를 위해 경사로가 없는 건물에 설치하는 간이 경사로가 장애인들의 통행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휠체어 무게를 견디지 못해 쉽게 파손되거나 경사로 기울기까지 천차만별인 탓이다.

올해 5월부터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면적이 75㎡ 이상인 신축 건물은 장애인 경사로 설치가 의무화됐다. 지자체들은 면적이 300㎡ 이하인 기존 노후 건물들을 대상으로 장애인 경사로 설치를 지원하는 '소규모 생활밀착형 경사로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시내 8개 구‧군은 매년 예산 1천여만원을 반영해 300㎡ 이하 점포를 대상으로 간이 경사로를 설치해준다. 간이 경사로의 규격은 기울기 7.1도 미만, 폭 1.2m 이상이다.

그러나 기껏 설치된 간이 경사로의 재질이 휠체어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운 나무나 얇은 철판이어서 쉽게 파손되기 일쑤라는 것. 대구시 장애인편의기술증진센터 관계자는 "나무 재질 간이 경사로는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고 플라스틱 재질도 쉽게 부서진다. 알루미늄이나 철제 경사로도 휠체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찌그러진다"고 지적했다.

설치된 간이 경사로의 규격도 뒤죽박죽이다. 8개 구‧군에 따르면 경사로 설치 시 지면과 단차를 고려해 경사로의 기울기와 높이 등을 정하는데, 인도 통행에 불편을 끼친다는 이유로 경사로 길이를 짧게 만들다 보니 기울기가 7.1도를 훌쩍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구청 관계자는 "지면과 건물 입구의 단차가 큰 경우에는 간이 경사로를 설치할 수 없다. 단차가 크면 기울기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 경사로를 길게 내야 하는데 인도 통행에 불편을 끼칠 수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빈번한 파손에 관리도 쉽지 않자 건물주들이 간이 경사로 설치를 주저하거나, 관리에 부담을 느껴 아예 철거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대구에 신규 설치된 간이 경사로는 ▷중구 9개 ▷동구 15개 ▷서구 15개 ▷남구 4개 ▷북구 12개 ▷수성구 6개 ▷달서구 6개 등 67개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은 간이 경사로를 오르기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도움벨 등 보조 장치 설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구시지체장애인협회 관계자는 "혼자 경사로를 오르기 어려워하는 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호출 센서를 설치하는 등 2차, 3차 보조 장치를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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