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물의 근원은 누가 만들었나. '굴정지인'(掘井之人), 우물을 판 사람이다. 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고, 고마워하는 게 인간의 도리다.
물을 마시면서 우물을 판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 됐다. 다른 사람이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우물에 침을 뱉는 이들마저 있다. 세상이 망조(亡兆)가 들고 나라가 미쳐 돌아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각설하고 논의의 핵심은 굴정지인, 우물을 판 사람 얘기다. 우물을 판 사람은 자신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우물을 팠을 것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물을 파는 수고를 감내했을 것이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후대(後代)를 위해 우물을 판 세대들이 수없이 존재했다. 베트남과 중동에 가서 달러를 벌어오고, 수출 전선에서 피땀을 흘린 이들이 우물을 판 세대들이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에 동참한 사람들도 미래 세대를 위해 우물을 판 사람들이다. 우리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는 앞서 우물을 판 세대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우물물을 맘껏 마시고 있다.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반도체에서도 우물을 판 이들이 있었다.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다. 호암이 반도체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1982년 미국 방문 직후였다.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을까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 기준에 견주어 현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 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삼성은 1983년 세계에서 3번째로 64KD램을 개발했다. 일본이 20년 걸려 해낸 일을 1년 안팎의 기간에 해냈다.
반도체처럼 앞선 세대들이 우물을 판 덕분에 잘 먹고살면서도 정작 미래 세대를 위해 우물을 파지 않는 게 지금 대한민국 모습이다. 반도체 특별법은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 특혜"라며 반대하는 바람에 석 달이 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풍력발전법을 안 해주면 반도체법도 안 해주겠다는 해괴한 주장까지 하고 있다. 오죽하면 나라의 미래를 땅에 파묻는 '매국노'(埋國奴)란 개탄까지 나왔겠나.
반도체 특별법은 공장 인허가 간소화,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증원, 시설 투자액 20% 세액공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하더라도 미국, 대만, 일본, 중국에 이어 세계 5위인 한국 반도체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주도권을 장악하려 총력전을 펼치는 마당에 특별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한국 반도체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뿐만 아니다. 서비스업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1년째 표류 중이다. 노동, 연금, 교육 개혁은 구호만 요란할 뿐 허송세월이다. 우물을 파는 일에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물을 파는 것은 고사하고 우물에 있는 물을 다 마시지 못해 안달이다. 후대를 위해 있는 우물이라도 남겨주면 그나마 다행이련만 우물을 없애는 짓까지 한다. 미래 세대에 나랏빚을 1천조 원이나 물려주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미래를 준비 안 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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