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계관시인 오든(W. H. Auden)은 '법은 사랑처럼'(Law, like love)에서 법의 속성을 인상 깊게 묘사했다. 시인은 농부, 노인과 젊은이, 성직자, 판사, 학자, 일반인, 성난 군중의 시각을 빌려 법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그중 백미는 시인 자신의 관점이다. 시인은 법이 사랑과 닮았다고 보았다. 법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강제하지(compel) 못하고, 사람들은 법에서 벗어날 수(fly) 없다고 하였다.
시인의 혜안이 말해 주듯이 법으로 사랑을 강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고향사랑법이 만들어졌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이다. 고향 사랑에 법을 차출할 정도로 지방의 위기감은 절박하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인구 감소와 인구 유출로 인한 지방 소멸의 우려이다. 일본에서 2008년부터 고향에 기부할 경우 세액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고향납세(故鄕納稅) 제도와 유사한 것이다.
이 법에 의하면, 기부는 자신의 주소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대하여 연간 500만 원까지 할 수 있다. 준조세화를 우려하여, 사람만이 기부할 수 있도록 하였고, 법인이나 단체는 기부하지 못한다. 고향이 아닌 지자체에도 기부할 수 있다. 재산상의 이해관계가 있는 지자체에는 기부할 수 없다. 기부의 강요, 적극적인 권유나 독려는 금지된다. 지자체는 기부액의 30% 선에서 기부자에게 물품 또는 경제적 이익으로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기존 법률에 따라 기부에 따른 세금 혜택도 받게 된다. 기부금은 기금을 설치하여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15%를 제외하고는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주민 복리 증진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하여야 한다. 고향사랑기부금의 접수 현황과 기금의 운용 결과 등은 필요적 공개 대상이다.
이 법의 목적은 고향에 대한 건전한 기부 문화를 조성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 균형발전에 이바지함에 있다. 법의 시행으로 농어촌 지역 재정의 충실화, 지역 경제 활성화 및 향토산업 육성, '관계인구' 유입을 통한 지방 소멸 억제, 기부자와 지자체 사이의 연결고리 형성 등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자체는 이 법의 시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제도의 성공 법칙은 명확하다. 기부금을 많이 모아서 잘 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간단치가 않다. 우선 기부금 유치를 위한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애향심과 답례품 제공, 세금 혜택만으로는 의미 있는 규모의 기부금 유치는 쉽지 않다. 기부를 포함한 모금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기부에 크게 의존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모금 전문가를 영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부는 무상이거나 비대칭적 대가가 주어지는 관계로 상품이나 서비스의 판매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전략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지자체가 확보한 기부 유치 전문성의 정도에 따라 성과에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지자체에서 지속가능한 사업이나 사회적 관심을 끄는 정책을 구상하여 클라우드 펀딩 형식으로 기부 유치를 할 수도 있다. 그 경우 주식을 답례품으로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나,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법 제정자의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금융과 일상생활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기부 플랫폼은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에서 직접 기부 플랫폼을 운영할 수도 있고, 민간의 기부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다.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지자체의 플랫폼을 맡아 운영하면 실패하기 쉽다. 민간 플랫폼을 이용하는 경우 수수료를 지급하여야 하는 부담이 있다.
기금의 운용도 기부금 유치 못지않게 중요하다. 가치사슬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기금을 일회적으로 사용하여 소진시킨다면 계속적인 기부 동기는 상실될 것이다. 탁월한 전문가를 기금 운용자로 확보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기업 마인드와 혁신 DNA를 갖추고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안목을 가진 출향 인사가 프로보노(pro bono) 자원봉사를 함으로써 기금 운용의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고향사랑법이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직접적인 인구 유입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면 인구 유출 완화와 관계인구의 창출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순한 고향 방문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것이 관계인구이다. 관계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그들이 위기에 처한 농어촌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면 인구의 개념이 수정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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