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원고청탁 연락이 왔다. 여러 가지로 분주한 중이었지만 부탁한 분의 심정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살아가며 개인적으로는 안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꽤 있다. 더구나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마음의 교집합이 넓어졌다면 나만을 생각하며 행동할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당연하게 해야 할 일마저도 거부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무척이나 사회성 없는 모습을 마주하고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러다가 그가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 소설 속 인물임에 안도했다. 그의 이름은 바틀비이다.
바틀비는 허먼 멜빌이 1853년에 발표한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이다. 허먼 멜빌은 한때 '백경'으로 번역된 '모비 딕'의 저자이기도 하다. 필경사란 손으로 글을 옮겨 적는 단순한 일을 하던 사람으로 컴퓨터와 프린터가 보급되며 사라졌다.
바틀비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필경사 업무를 담당하는 말단직원으로 등장한다. 고용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직장 상사인 변호사가 내린 업무지시를 별 이유 없이 거부한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때 그 직장 상사는 당황해하면서도 그런 행동에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며 격앙된 감정을 스스로 다독인다. 예상의 한계를 한참 벗어난 일에는 대응 방법도 막연해지기 마련이다.
"바틀비의 쓸쓸함이 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져갈수록, 그만큼 그 우울은 두려움으로, 그 동정심은 혐오감으로 녹아들었다."(50쪽)
허먼 멜빌은 어떤 생각으로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그는 유년 시절 파산한 가정형편으로 학업도 중단하고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수필은 나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라면 소설은 나의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쓰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생전에 독자와 비평가에게 외면받은 작가의 고단한 처지가 우울한 정서와 저항하는 태도로 이 작품에 녹아있다. 마침 이 시절은 미국에서 월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자본주의가 자리 잡아가던 때이기도 하다. 자본의 이익이 개인의 삶보다 우선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던 시대에 의문을 던진 이야기로도 읽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고용인이라는 지위는 단순히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분을 지칭한다. 이런 신분적 위치를 벗어나 저항하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다. 바틀비의 무모함이 낯설게 다가오지만 스스로 소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상황에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근면 성실이 최고라고 교육받고 믿어온 세대라면 바틀비의 마음을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배태만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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