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유학 시절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의 우리 반 선생님이 작은 엽서를 들고 콜로키엄에 들어 오셨다. 엽서에는 조금 유치한 콜라주로 밑에는 글이 쓰여 있는 작품이었다.
덴마크에서 오신 선생님과 우리 반 학생들은 영어로 의사소통했는데 어렵사리 주섬주섬 꿰맞춘 선생님의 설명은 "이 작가는 자기가 정말 존경하는 작가다. 그는 직업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다. 그는 손주를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지금 뒤셀도르프에서 전시하고 있다. 가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정도였다.
나는 선생님에게서 작은 엽서를 한 장 얻어 그곳에 적혀있는 주소를 찾아 전시를 관람한 기억이 난다. 아직도 내가 이 전시를 기억하고 있는 건 그때 여러 장의 엽서를 전시장에서 가지고 와 아직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의 작가인 존 엘사스(John Elsas, 1851-1935)는 74세의 나이에 독특한 예술 작품을 시작해 죽기 전까지 스케치, 운율이 있는 시로 완성된 약 2만5천장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70세까지 상인과 주식 중개인으로 생활했고 1920년대 초 76세의 나이에 그의 손주들을 위해 운율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손주를 위해서 일반적인 지혜와 교육적 조언이 담긴 삽화가 있는 편지, 이야기 및 시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예술에 대한 자신의 재능과 성향을 발견했다. 그의 작품은 수채화, 수묵화, 콜라주와 같은 다양한 기법을 한 장의 그림으로 조합하고 그림 하단에 2줄 또는 4줄로 된 텍스트를 써놓은 것이다.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책은 미국의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내게 창의적 노년에 대한 깊은 감동을 줬다. 니어링 부부에게 있어서 농사, 집 짓기, 사탕 시럽 만들기, 책 읽기와 쓰기, 악기 연주는 그들의 삶이자 철학, 문화예술 활동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노년은 어떨까, 나는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를 상상해봤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노년은 니어링 부부의 삶의 조건과 같을 수 있을까? 어쩌면 코로나19 이후의 사회적 환경은 노년의 삶이 사회로부터 더욱 소외되어 쓸쓸함이 더 가중될 수도 있지 않을까?
노년의 삶은 단순히 '나이 듦'의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시기로서의 '삶'의 문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노년의 삶은 젊은이들과 동일하게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며, 폭넓은 삶의 방식과 삶의 질을 보여줄 수 있다. 단순한 돌봄과 배려가 아닌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노인'이라는 독특한 삶의 시간과 자기표현은 '노인으로 머물러 있으라!'는 '노인의 동일화' 되기가 아닌 독특한 삶의 과정으로 인식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노인의 삶의 방식과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노인 문화예술교육은 대안적 교육으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디지털의 사용은 폭증했다. 디지털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하지만 노년층의 디지털 이용은 여러 이유로 접근에 장애물이 많다. 노년의 삶을 생의 '특별한 시기의 삶'으로 생각하며 그 시기에 관한 표현을 미디어를 통해서 창작하고 주변과 나누는 일은 21세기형 니어링 부부의 삶과 같다. 창의적 삶은 인간으로서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인생의 시기마다 사회의 조건과 환경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그 방법이 디지털이든 아날로그적 방법이든 창의적인 노년의 삶을 보낸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100년 전 독일의 한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남긴 유산이 감동으로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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