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갖추지 못한 예술가는 현대 사회에서 AI일 뿐이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너무나도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예술가로서 예술만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예술가라기보단 기능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정도의 수준에 스스로가 만족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좀 더 깊이감 있는 예술가가 되거나 높은 수준의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연극, 뮤지컬을 시작했을 땐 배우로 활동을 했었다. 물론 그 시절이 행복하고 좋았다. 처음이라 작품을 하나씩 마칠 때마다 실력이 느는 것이 느껴졌고 자신감도 생기던 시절이었다. 또한 주위에서도 점점 배우로서 인정을 해줘,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언제까지나 배우로 활동할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았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래 나라는 인간이 그러한 성향을 지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름대로 인지도 높은 공연의 주인공으로 장기공연을 하던 중 매너리즘과 자괴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스스로가 예술가라기보단 그냥 관객들 즐겁게 해주는 기능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연출과 극작으로 포지션을 전향한 후에 창작의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인문학을 공부하게 됐고, 깨달았다. 과거의 나의 갈증과 답답함은 인문학의 부재에서 왔던 것이란 것을.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그 시절 내가 작품에 관련된 역사라던지, 문학작품, 철학 같은 학문을 접하고 깊이 있게 고민했더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배우를 하지 않았을까? 도전 의식과 예술적 충만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올해 대구문화예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청년 예술가 육성사업에 연출 파트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2년마다 돌아오는 이 육성사업은 나이 제한이 있어,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 사이에선 나름으로 경쟁이 있는 무대다.
연출 파트의 PT 심사는 작품의 분석과 연출계획에 대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15분 제한 시간 내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에 대해 연출계획안을 발표하는 상황에서 필자는 연출 계획보다는 작품 분석에 집중했었다. 얼마나 이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작가가 살아온 시대에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으며, 이 사건들이 작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래서 체호프라는 대문호가 어떠한 철학을 가지고 삶을 살며 집필활동을 하였는지 이야기했다. 그래서 갈매기라는 작품은 어떠하게 해석할 수 있으며, 작품의 배경은 작가가 살아온 상황에서 어떠하게 그려지며, 등장인물들의 인간 군상은 이러한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으론 내가 분석한 갈매기라는 작품과 연출로서 말하고 싶은 주제를 끝으로 발표를 마쳤다.
심사에 선정되고 나서 당시 심사위원이셨던 선생님 한 분을 우연히 뵙게 됐고, 아주 오랜만에 인상에 남는 PT였다고 잘하셨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부끄럽지만 매우 뿌듯했다.
인문학과 친해지는 것이 단지 예술인으로서만은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좋은 점이 많다. 코로나 사태로 우울감이 심했을 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며 마음의 안정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마음을 못 잡던 시기에는 성경과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며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단기간에 쌓이지 않는 것이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여러 장르와 학문에 걸쳐 꾸준히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늘 인문학이 더 쌓여갈 수 있도록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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