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미묘한 일이다. 내 안의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이니 그건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특히 어떤 판본을 읽느냐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제대로 된 국내번역은 1982년 황현산에 의해 이뤄졌다. 마구잡이로 번역된 수집 종의 '어린 왕자'가 독자를 괴롭히던 시절, "내가 불평을 들어주고, 허풍을 들어 주고, 때로는 침묵까지 들어준 꽃이기 때문이야" 같은 정확한 문장을 통해 우리는 번역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했다. 이 책에서 영감을 받은 법정이 자신의 사유를 크게 확장할 수 있었다는 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어디 법정 한 사람뿐일까?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의 국내번역은 2004년, 당시 34세의 젊은 작가 김연수의 역작이다. "그는 나의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역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존심이 작용했다. 영문과를 나왔을 뿐인 젊은 작가의 패기와 내공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녀는 그의 허접한 용모를 살피며 빵장사가 되는 일 말고 그의 삶에서 다른 걸 해보기라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같은 피부에 닿는 문장을 만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번역을 통한 자극은 번역하는 작가의 언어 감각을 무한히 확대시킨다. 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갱신한 작가로 김수영 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번역한 작가만 해도 로버트 로웰, 엘런 긴즈버그, 엘리자베스 비숍, 예이츠, 르페브르, 시어도어 뢰르케, 월트 휘트먼 등 일곱 명에 이른다.
뿐만 아니다. 그는 'VOGUE'와 '엔카운터'를 비롯한 당대의 잡지도 구독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시론은, 그의 기질은 물론 자신의 언어와 영미 현대시의 언어와 문화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과정에서 나왔다. 최근 젊은 시인 황유원의 밥 딜런 시 번역은 김수영과 겹쳐져 읽힌다.
1991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로 온 사이토 마리코가 체류 2년만에 '입국'이라는 시집을 냈는데, 외국인이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언어와 문화감각에 놀란 적이 있다. 한국어와 문화를 자신의 몸으로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언어감각을 제련, 뛰어난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자신의 시를 번역하면서 언어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며칠 전 시인 송재학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의 시 50편을 스스로 영역(英譯)하고 있다고 했다. 양국 언어의 미묘한 파장을 그는 "언어가 들끓는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자신의 시의 미운 부분이 보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시인 최문자는 시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변화의 첩경은 이국 언어와의 부딪힘과 피흘림에서 탄생하는 게 아닐까? 긴장과 갱신을 위해 좋은 판본을 읽거나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작품의 왜소함을 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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