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나는 싫어하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휴일 아침에 전화 받는 것이었다. 휴일은 늦잠을 자라고 있는 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나를 찾는 전화가 온다면 당연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가끔 친구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전화를 걸어오면 항상 내 기분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심한 말을 해줬다.
두 번째로 싫어하는 것은 휴일에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산을 좋아한다. 산을 오를 때의 적당한 고통과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공기향이 좋아 퇴근할 때 가끔 산을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그러나 학창시절에는 너무나 싫었다. 휴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쉬어야 한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철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나는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가족 중 누군가 빨리 받아주길 바라며 계속 잠을 청했다. 잠시 후 전화를 받은 어머니께서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러고는 전화 받아보라고 하셨다. 순간 짜증이 났다. 도대체 어떤 친구가 아침부터 심한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화를 건 사람은 내가 평소에 혼자 좋아하던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은 예쁘고 매력이 넘쳤기 때문에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에 비해 내 모습은 굴러다니는 공처럼 뚱뚱했기에 단 한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바로 우리 옆집에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오늘 친구들과 앞산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갈래?"
전화를 끊고 나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옷장을 열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가장 아끼는 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산을 타기 위해 현관문을 나섰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던 그 날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 학창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우리 주위에는 항상 우리를 설레게 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님, 가족, 고등학생 때의 나처럼 또래 친구일 수도 있고 학교 선생님일 수도 있다. 지금 연애 중이라면 날 사랑에 빠지게 한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나를 설레고 행복하게 한다. 심지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더라도, 그들과 함께라면 그 시간이 행복으로 바뀌게 된다. 한마디로 그들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끝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한 해가 다가온다는 뜻이다. 새롭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 같은 단어다.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어쩔 수 없이 남겨야했던 후회의 감정들이 새해에는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조차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더욱 더 행복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해 모두들 힘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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