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상식·법치 작동하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시민 언론'을 자칭한 유튜브 매체 '더탐사'는 직원 채용 공고를 내면서 '윤·한 등이 때려죽어도 싫으신 분'을 문구로 내걸었다. 윤·한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적 정치적 혐오와 증오를 이용하겠다는 저의이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 가짜 뉴스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이들은 정권의 압박으로 진실이 호도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마치 독재자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사인 양 행동한다. 그들에게 윤 대통령은 새벽까지 술에 빠진 폭군이어야 하고 한 법무부 장관은 검찰공화국의 계엄사령관이어야 한다. 거짓이 드러나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 따위는 해서도 안 된다. 이 유튜브 채널의 50만에 이르는 구독자들은 그 동영상을 소비하면서 위안을 받고 열광하며 '슈퍼챗'을 쏜다.

더탐사와 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밝힌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TV로 생중계되는 국정감사를 활용해서 그들이 생산한 가짜 뉴스를 진짜로 믿도록 공조한다. 가짜 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한 기자 출신 정치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이율배반적 행동이었다. 후원금을 노린 행동은 아니라지만 김 의원은 탄압받는 정치인 코스프레를 통해 올해 후원금 계좌를 채우는 등 대박을 쳤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둬야 할 사제들이 해외 순방에 나선 대통령 부부가 탄 전용기 추락을 기원하는 글을 SNS에 게재하는 것이 일상이 된 대한민국이다. 잊힌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은 '풍산개 파양 쇼'를 통해 정부의 대북 정책 전환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개 달력'을 만드는가 하면 반려견 사망도 즉시 알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169석 거대 야당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의 행보 역시 정상적이지 않다. 대장동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로 최측근 정진상·김용이 구속되고 수사망이 턱밑까지 치고 들어오자 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생략하는 등 언론과의 접촉을 끊었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상민 장관 해임 건의안을 밀어붙이면서도 자신은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는 '내로남불'을 보여줬다.

확증 편향의 정치가 지배하는 지금의 상황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지속된 '편 가르기·갈라치기' 정치가 남긴 유산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성향이 아니라, '문과 이' 그리고 '윤 대통령' 중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가 아니라, 더 증오하고 더 혐오하느냐에 따라 양 극단으로 나눠지고 찢어졌다.

잠시나마 온 나라가 카타르 월드컵을 계기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하나로 뭉쳤다. 투혼을 발휘해서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국가대표를 통해 우리는 하나 된 통합의 기쁨을 잠시나마 맛보았다. 그러나 국가대표선수들이 윤 대통령의 초청으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만찬을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악플이 달리면서 증오와 혐오가 축구로는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국가 간 무한 경쟁 시대에 우리는 언제까지 증오와 혐오로 뒤범벅이 된 늪에 빠져 과거로 뒷걸음쳐야 하는가. 화물연대의 파업을 멈추게 한 것이 원칙과 법치였듯 정치적 타협이라는 해법보다는 상식과 법치가 온전하게 작동하도록 노력하는 고통의 시간 외에는 증오와 혐오의 정치를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