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tvN표 인문학 수다쇼의 귀환 '알쓸인잡'

‘알쓸’ 시리즈, 이번엔 ‘인간’이다…인문·범죄·인간 '지식의 대중화' 인증 브랜드
MC 맡은 장항준 감독·방탄 RM, 소설가·천문학자·법의학자 모여 이야기 전달

'알쓸인잡' 포스터. tvN 제공

tvN '알쓸' 시리즈가 돌아왔다. 이번엔 '인간'이 주제다. 이름 하여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잡학사전'(이하 알쓸인잡)이다. 기존 '알쓸신잡'에서 '알쓸범잡'을 거쳐 '알쓸인잡'까지. '알쓸인잡'은 이제 이 시리즈가 tvN표 인문학 수다쇼의 브랜드가 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7년 처음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이 방영됐을 때, 이 인문학 수다쇼가 만들어낸 영향력은 컸다. 5.4%(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시청률이 7.2%까지 치솟았고, 이런 대중적 관심은 그해 이어진 시즌2(최고 시청률 6.6%), 그리고 그 다음해 방영된 시즌3(5.8%)까지 계속 이어졌다.

사실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이만한 성과를 낼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을 콘셉트로 삼고, 그 지역에서 관련된 이야기들을 갖고 다시 모여 벌이는 인문학 수다쇼는 스토리텔링이 갖는 묘미에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결국 출연자였다. 유희열이 MC를 맡아 유시민, 황교익, 김영하, 정재승이 연 시즌1은 깊은 인문학적 지식은 물론이고 이를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보따리로 풀어내는 출연자들의 힘에 의해 탄력을 얻었다. 물론 시즌2에서는 김영하와 정재승 대신 유현준과 장동선이 합류했고, 시즌3에서는 다시 김영하가 합류하고 김진애, 김상욱이 더해지는 변화를 겪었지만, 유시민이 계속 중심을 잡아가며 프로그램의 존재감을 유지시켰다. 그 후 유시민이 보다 깊게 정치 행보 속으로 들어가면서 프로그램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그만큼 유시민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알쓸' 시리즈는 대신 그간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던 '범죄'를 소재로 2021년 '알쓸범잡'이라는 스핀오프 프로그램을 내놨다. 박지선, 권일용 같은 범죄 관련 전문가들을 주목시키며 '알쓸' 시리즈의 명백을 이은 '알쓸범잡'은 시즌2까지 제작되며 다양한 범죄들을 조명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이때도 역시 여행이라는 콘셉트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서 그 지역에서 터진 강력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가 채워졌다. 그리고 돌아온 '알쓸인잡'은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을 전면에 내세웠다. 사실상 인문학이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탐구라는 걸 염두에 두면, '알쓸인잡'은 '알쓸신잡'과 거의 유사한 형태로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관점을 '인간'에 둠으로써 매회 주제나 구성이 달라졌다.

'알쓸범잡'을 통해서는 패널 중 한 명으로 자리했던 장항준 감독이 '알쓸인잡'에서 방탄소년단 RM과 함께 메인 MC를 맡게 되면서 다분히 영화적인(?) 소재나 구성이 등장했다. 첫 회에서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을 첫 번째 토크주제로 세운 것이나, 2회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 같은 토크주제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장항준에게도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토크 주제에 맞게 각 출연자들이 갖고 온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인문학적 수다에 가깝다. 이미 '알쓸신잡'에서도 많이 나왔던 그 수다가, 다만 '특정한 주제의 인물'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지는 게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의외로 크다. 결국 '알쓸신잡' 같은 인문학 소재의 수다쇼가 가진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사람 이야기'일 수 있어서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사람 이야기'는 지식 자랑과는 사뭇 다른 보편성을 갖기 마련이다. '알쓸인잡'이 비슷해보여도 의외로 흥미진진해진 이유다.

'알쓸인잡'의 한 장면. tvN 제공

◆신의 한 수가 된 새로운 출연진들

메인 MC를 맡은 장항준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박수를 받는 것이 꿈"이라고 자신을 낮춤으로서 웃음을 주지만, 사실 그의 '알쓸인잡'에서의 역할은 뚜렷하다. 그건 영화감독으로서 세상에 다양한 스토리에 관심을 갖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사람 이야기'에 특히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인문학도 그렇지만, 콘텐츠에서도 늘 그 성패는 '인물의 매력'에서 좌우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장항준이 던지는 '영화 주인공으로 삼고 싶은 인간' 같은 주제에 대해 김영하가 소설가 특유의 상상력을 더해 허균의 일대기를 '홍길동전'과 엮어 소설처럼 풀어내는 이야기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은 시점을 가져온다. 일관성을 찾기가 다소 어려운 허균의 일대기를 단서로, 혹시 허균이 두 인물은 아니었을까 하는 김영하의 상상력을 더해 허균과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하는 K슈퍼히어로물을 상상하는 이야기가 가능해진다.

그간 '알쓸' 시리즈에 유독 여성 출연자가 적었다는 지적에 응답하듯 출연한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는 첫 방송에 화성에 헬리콥터를 띄운 과학자 미미 아웅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만만찮은 스토리텔러라는 걸 드러낸다. 특히 2회에서 '우리는 어떤 인간을 사랑할까?'라는 질문에 "나 자신"이라는 의외의 답을 가져온 그는 "부족한 나 자신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제의 내가 잘못한 것도 나고, 오늘 실수했던 것도 나고, 부족한 점을 메워서 내일 더 잘하려는 것도 나고, 그러다 또 실패하는 것도 나"라는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RM이 UN에서 연설을 했을 때 했던 "Love myself"라는 문구와 딱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심채경 박사는 천문학자답게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설명한다. "무게중심이 천체 안에 있으면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무게중심이 천체 밖에 있으면 궤도가 계속 섭동(행성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현상)이 되는 거예요." 즉, 같은 이야기지만 자신의 관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그걸 풀어낼 수 있다는 걸 심채경 박사는 보여준다.

여기에 의외로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갖고 자신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참여하는 RM이나, 법의학자로서 '알쓸범잡'에서는 범죄에 대한 이야기만 했지만 여기서는 범죄 이외에도 깊은 인문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이호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알쓸신잡3'부터 '알쓸범잡'까지 최다 출연한 김상욱 교수의 박학다식한 면면은 거의 모든 수다에 과학적인 관점을 던져준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을 풍요롭게 만든다.

'알쓸인잡'의 한 장면. tvN 제공

◆보다 깊어진 수다, '알쓸' 브랜드의 탄생

물론 '알쓸인잡'이 '알쓸신잡'이 만들었던 파괴력 있는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3%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내고 있는 '알쓸인잡'은 tvN이 인문학 수다쇼로 만들어낸 '알쓸' 시리즈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했다는 인증처럼 보인다. 이제 '알쓸'을 붙여 다양한 카테고리를 대상으로 거기 어울리는 전문가들을 섭외해 풀어내도 충분한 인문학 예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사실 '알쓸' 시리즈 성공의 핵심은 인문학에서도 생겨난 '지식의 대중화' 경향을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훌륭하게 녹여냈다는 점에 있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다소 긴 제목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교양적인 진중함과 예능적인 가벼움이 한 단어씩 오르내리는 정서를 담아낸다. 무언가 알아두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고, 그렇지만 의외로 파고들다 보면 신비함마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깊게 빠져들기보다는 잡다한 수다처럼 들을 수 있는 인문학이 그것이다.

깊이 보다는 넓이를 추구하며 인문학의 저변을 넓혀오던 '알쓸' 시리즈는 이제 '범죄'니 '인간'이니 하는 소주제로 새로운 집중을 시키면서 깊이에도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물론 혹자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던 '알쓸신잡'의 그 넓이가 그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알쓸' 시리즈는 조금씩 분야를 나눠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확장하는 길을 향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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