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족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심술궂게 입을 아래로 내리고 있는 둥근 얼굴의 흑백 인물 사진은 뭔가 불만에 가득 찬 사람처럼 보인다. 사진의 주인공은 독일 표현주의 화가 막스 베크만(Max Beckmann)이다. 베크만은 1884년 2월 12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서 바이마르, 파리, 피렌체, 베를린 등 유럽 전역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나는 그의 그림 중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에 그린 '가족'을 인상적으로 봤다. 6명의 가족이 연극무대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은 빔 밴더스 감독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첫 장면이 생각나게 한다.

1987년 개봉된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 )이라는 원제의 영화는 분단된 베를린의 황량한 모습과 그곳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베크만의 1920년 가족 그림 역시 그런 분위기의 그림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전개에 따라서 상황이 변하므로 고통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림은 시간을 담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베크만의 '가족'은 우울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그림의 중앙, 탁자 위에 놓인 불 켜진 초를 통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그림의 배경은 전쟁 전의 베를린 아파트에서 자주 주최했던 가족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절망을 감지하고 얼굴을 가리고 있다. 베크만의 아들로 예상되는 꼬마 아이는 바닥에 뒹굴고 있다. 화가는 소파에 기대어 의기양양하게 분장 파티를 위해 차려입고, 한 여인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그림은 가족의 아늑한 저녁을 묘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이 엉망진창인 것 같다. 정말 가족인가 의심스럽다. 우연히 이 공간에 같이 있게 된 낯선 사람들처럼 보인다.

가족의 형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한다. 최근 들어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서 가족 형태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특히 비혼으로 인한 1인 가족과 무자녀 가족이 세계적으로 느는 추세다. 이는 전통적인 원가족에 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전통적 가족관과 현실은 충돌하며 가족관에 대한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사회의 큰 목소리에 묻혀서 억압받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무자녀 가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혈연중심주의'에 기대어 기존 가족관을 벗어난 경우를 이기주의나 무능력함으로 비판한다. '정상가족'이라는 비정상적인 이데올로기는 '무자녀 가족' 을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겉으로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무자녀 가족은 자신들이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이기주의자라고 자책하거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도 있다. 가족과 자기 삶에 대한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경산의 보물섬에서 올해 하반기 'P씨의 무성영화 제작기'라는 이름으로 무자녀 가족을 위한 가족 여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3분 미만의 무성영화를 각자 만들기 한 이 프로그램은 '무성영화 제작'을 구실로 삼아 각자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자리였다. 분명히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하고 있다. 각자 다른 모습의 삶의 선택과 다른 색깔의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 가족의 의미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나는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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