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 올해 우리 사회를 진단한다면?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 특임교수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김승동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정치학 박사)

연말마다 교수신문이 전국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조사해 그해 우리 사회 모습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하고 있는데 '2022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라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됐다. 과이불개는 논어 '위령공' 편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라고 했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이유를 박현모 여주대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장)는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이 말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고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도 도무지 고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좀 양비론(兩非論)적 평가인 것 같다.

교수신문의 역대 '올해의 사자성어'들은 대단하다.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한 표현으로 많은 이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엔 오리무중(五里霧中),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다),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구름은 빽빽한데 정작 비는 오지 않는 것처럼 여건은 조성되었으나 일이 성사되지 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다), 2007년엔 자기기인(自欺欺人·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다)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엔, 호질기의(護疾忌醫·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꺼려 듣지 않다),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다),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진실을 숨겨 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나쁜 일을 하고 남의 비난을 듣기 싫어서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 등이다. 모두 시의적절한 표현으로 이해되지만, 선정된 사자성어가 일반인에겐 너무 생소하고 어려운 한자라서 현학적인 교수들만의 '잘난 척' 경시대회로 여겨졌다.

이런 지적 영향인지 박근혜 정부 때부터 그나마 사람들이 알기 쉬운 단어로 표현했다.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하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이다),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실정으로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2016년엔 군주민수(君舟民水·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였다. 참으로 우리의 슬프고도 아픈 역사와 실상을 잘 드러낸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 여겨진다.

문재인 정부의 2017년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였다.

이 중에 개인적으로 압권이라 생각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2021년의 묘서동처(猫鼠同處)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묘서동처는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 놈과 한패가 됐다"는 것으로 지난해를 진단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표현의 극치다. 그 결과, 200년 간다고 장담했던 좌파 정권이 하루아침에 교체됐다.

짤막한 사자성어로 시대를 진단하려는 교수신문의 노고에 경의와 찬사를 보낸다. 거기엔 국민들의 한숨과 탄식이 스며 있고, 양반과 고관대작, 임금까지 조롱하는 '안동 하회 별신굿'을 보는 것 같은 해학과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이번 사자성어는 그렇게 울림이 있거나 와 닿는 단어가 아닌 것 같다. 교수신문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고 개선하려다 보니 대부분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선정되는 것 같은데, 시대에 따라 좀 밝고 긍정적인 단어도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올해는 대선을 통해 '망국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나라'로 끌려가다가 벗어난 국민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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