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라스트 댄스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결승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로베르트 바조의 원맨쇼 덕분이었다. 바조는 16강부터 4강까지 다섯 골을 몰아넣었고 이는 모두 이탈리아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도 관중의 심장 박동을 극대화하는 '극장 골'이었다.

열한 명이 하는 축구라지만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경기의 판도를 바꾸는 경우는 숱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 예선에서 프랑스는 스위스와 비긴 것은 물론 약체로 평가되던 대한민국과도 비기면서 자국 언론의 거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설상가상 일부 선수들의 불협화음까지 크게 보도되면서 감독의 지도력마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럼에도 프랑스는 기어이 결승까지 올랐다. 아트 축구의 지휘자, 지네딘 지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였다. 한의약에 비유하자면 그의 플레이는 막힌 혈을 뚫어 주는 침(鍼) 한 방으로 봐도 무방했다. 최강을 자부하던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리오넬 메시라는 걸출한 스타와 함께 집중 조명을 받으며 결승에 올랐다. 특히 그의 '라스트 댄스'를 위해 아르헨티나 전 선수들이 합심하면서 서사적 요소까지 가미됐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운다는 의미의 '라스트 댄스'가 의미 있는 것은 그가 보다 젊은 시절 이룬 성과 덕분이다. 시대를 풍미한 선수로 조명받았지만 비례하는 결과물이 없을 때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198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36세에 불과하지만 4년 뒤 월드컵에서는 40세가 된다.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것이다. 40대는 프로에서 현역으로 뛰어도 집중 조명을 받는다. 체력적 부담을 이겨내기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골키퍼가 아닌 포지션에서 40대가 월드컵에 출전한 경우는 희귀하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돌풍의 팀인 카메룬의 공격수 로저 밀러는 1994년 월드컵에도 42세로 출전한 바 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최선을 다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라스트 댄스'라던 선수들 중에서 몇몇은 다음 대회에서 또 보길 기대한다. 그때는 기가 막힌 볼 트래핑과 기술에 대한 감탄보다 대회 출전 자체를 경탄하는 시선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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