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되었고, 논의를 거쳐 10여 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평이한 감각에 머물거나 시적 긴장을 견인하는 힘이 부족한 작품들이 일차적으로 걸러졌다. 현실의 문제를 예리하게 파고들면서 내면의 감정을 응축한 절제의 미학과 시어의 갱신을 이루어낸 작품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재독과 윤독을 거쳐 5편으로 압축한 뒤 다시 3분의 작품을 두고 최종적으로 깊은 논의를 거쳤다.
박이음의 시는 세련된 형식과 새로운 화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관계의 어려움과 현실의 불안을 포착하는 감각이 돋보였다. 툭툭 끊기는 질문과 대화들 속에는 대상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결단이 담겨 있었다. 내밀한 고백과 연계된 낯선 이미지가 감정의 파문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시적 대상의 관계와 상황의 맥락이 잘 잡혀 있지 않아 시적 주체의 사유와 감정선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감각적인 언어 구사와 주제에 따라 목소리를 다양하게 변주하는 능력도 좋고, 시의 도입부를 도발적인 진술이나 감각적인 묘사로 제시하여 흡인력 또한 있었으나, 환상적인 상황 설정이 혼돈스러운 시적 전개와 맞물려 의미를 잡기 어려웠고 흐릿한 환상으로 처리된 종결부에서 오히려 시적 긴장이 떨어지는 면이 아쉬웠다. 투고한 다른 시편들의 질적 편차가 있다는 것 또한 아쉬움으로 남았다.
박선민의 시는 새로운 발견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중심에서 이탈되거나 인식의 '외곽'에 머물러 있는 것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낯선 사유를 끌고 가는 힘이 있었다. 또한 정해진 중심과 질서가 포섭하지 않는/ 못하는 주변의 것들, 중간과 평균으로 재단된 것들 너머를 지향하는 이미지들이 교직되면서 주제로 응집되어 시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었다. 허나 상상력의 폭이 예상된 범위 안에 머물러 있고, 관념적인 진술이 사유의 깊이를 동반하지 못하거나 체험의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동어반복에 그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투고된 작품들이 엇비슷한 시적 구조를 보이고 있으며 목소리도 일정해 단조로운 인상을 받았다. 시적 대상과 현실의 고통이 맞닿는 자리를 섬세하게 잇대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박장(본명 박미영)의 시는 언어의 내포와 외연의 긴장을 최대한 끌어올려 역전된 현실에 대한 감각으로 밀고 가는 힘이 있었다. 시적 상황을 다층적으로 구성하는 형식적 실험과 세계 내의 상징적 폭력에 따른 고통이 핍진하게 담겨 있었다. 일상적 상황과 사건을 시적 소재로 삼으면서 시적 상상이 현실과 떨어지지 않는 접착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불행한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형상화해내는 것도 장점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박스에 든 사람'은 자본주의의 상품 체계에 종속된 삶, 비굴하게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존재가 지워지는 현실이 아버지를 홀로 부양해야 하는 삶의 힘겨움과 겹쳐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간명한 상황 전개가 주는 시적 긴장, 안과 밖을 역전시키는 상상력, 언어의 굴곡과 뒤틀림을 통해 찢어지고 뜯어지고 구겨진 삶의 맨살이 드러난다. 주문을 걸어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파악,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지워진 삶에 대한 냉철한 인식으로 우리 삶의 어두운 '구석'을 정확하게 포착해낸 이 신인의 단단한 내공이 앞날의 시작(詩作)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큰 기대를 가지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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