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대첩 등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승전의 기록은 우리 역사에 수없이 많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은 72년 전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공산화 코 앞에서 구해낸 낙동강 전투만한 게 없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0세기 후반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음지에서 양지로 건져낸 기념비적인 현장이지만 사실상 방치돼 있다. 6·25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최대 규모의 국제전인데도 그런 흔적과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전 세계 10여 개 나라의 젊은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던졌지만 제대로 된 위령시설도 하나 없다.
12월 23일. 낙동강 방어선 이른바 '워커라인'을 설정하고 북한군의 파상공세를 막아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월턴 해리스 워커 당시 미 8군 사령관의 72주기 기일을 맞아 낙동강 전투가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역으로 만들어 나가자는 차원에서 낙동강 방어선의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되돌아본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 성지 낙동강 호국벨트
6·25전쟁 다부동 전투 영웅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동상이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건립된다. 백선엽 장군 동상 건립 추진위원회는 내년 7월 백 장군 3주기 추모식 이전 동상 제막을 목표로 이달 21일 발족했다. 경북도는 향후 다부동기념관에 국비 포함 예산 100억원을 들여 백선엽 장군 기념관을 짓고 상설·특별전시를 열 계획이다.
군 안보 전문강사 A 씨는 "백 장군님 동상이 세워지고 경북도가 장군님 기념관 건립과 상설·특별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은 잘된 일이지만 이 사업을 다부동기념관으로만 국한해서는 절대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침략을 물리치고 백척간두의 나라를 구해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현장인데, 이런 역사적인 승리의 현장을 사실상 방치하는 건 정말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문객이 줄을 잇는 통영 한산대첩 유적지나 미국 등 선진국의 메모리얼파크와 달리 다부동전투와 낙동강 방어선 현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역사적 비중으로 봐도 몇 십 배, 몇 백 배 더 중요한 현장이다"면서, "하루빨리 다부동을 포함해서 낙동강 방어선 지역 전체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 성지가 되고, 전 국민이 안보의식을 새롭게 하는 국가 차원의 성역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다부동기념관을 찾은 한 예비역 대령은 6·25전쟁과 관련해 "미군 장성의 아들 35명이 전사, 부상 또는 실종됐다. 1951년 제임스 밴플리트 UN군 사령관의 외아들 지미 밴플리트 공군 중위는 B-26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해 적진에서 격추돼 전사했고, 워커 사령관의 아들 샘 워커 대위도 보병 중대장으로 복무했다"고 전했다.
또,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조지 패튼 장군 아들 조지 패튼 4세 중위, CIA국장이었던 덜레스의 아들 앨런 덜레스 2세 중위도 참전했다. 1952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가 전쟁 중인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들 존 아이젠하워 소령도 복무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미군이 세계 최고 강군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최첨단 무기 때문 만은 아니다. 군인의 사기는 자신의 희생을 국가가 잊지 않고, 사회가 정당하게 평가해줄 때 충천한다"면서, "군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정당하게 평가하고 제대로 기리는 사회적 공감대가 요구된다. 그 첫걸음은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구한 낙동강 방어선을 호국벨트화하고 국가 차원에서 성역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워커라인과 12월 23일
72년 전 오늘(1950년 12월 23일). 6·25전쟁 흥남 철수 작전 막바지이던 이날 오전 서울 북방 11마일, 의정부 남방 6마일 지점(현재의 서울시 도봉구 도봉역 부근) 교통사고로 UN군 지상군 사령관이자 초대 미 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 중장이 운명을 달리했다.
워커 장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선(워커라인)을 구축하고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 만약 포항-영천-왜관-창녕-마산을 잇는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으면 북한군이 부산까지 내려가는 건 시간문제였고, 그랬으면 인천상륙작전과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이다.
낙동강 전선이 위태롭자 대한민국 정부도, 육군본부도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미 8군 사령부를 대구에 그대로 두면서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했다. "Stand or Die"(사수하느냐 죽느냐뿐)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워커 중장을 '낙동강의 영웅'이라고 했다. 워커힐 호텔, 워커 전투화, 대구의 캠프 워커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장은 "워커 장군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는데,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라고 일갈했다.



◆북한군 8·9월 총공세
당시 국군과 UN군이 전쟁의 승패를 걸고 한반도에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곳은 부산이었다. 부산은 UN군 사령부가 있는 일본 및 태평양과 연결이 용이하고 가장 근거리에 위치한 항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해안, 동해내륙, 대구 정면, 창녕·영산, 마산 정면 등 낙동강 방어선 어느 한곳이라도 돌파를 허용한다면 부산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부산을 빼앗기면 UN군의 해상철수와 함께 대한민국의 패망을 의미한다. 때문에 북한군도 전쟁의 최종 목표를 부산으로 선정하고 총공세를 감행했다.
북한군의 8월 공세는 5일을 전후해 낙동강 전 전선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UN군이 배치된 마산-왜관 구간과 국군이 배치된 왜관-포항 구간의 곳곳이 북한군의 공격으로 돌파되고 국군 및 UN군의 역습으로 격퇴되는 피를 말리는 싸움이 이어졌다.
특히, 국군이 담당한 동서로 뻗은 경북지역 방어선은 험준한 산악능선이라 북한군 침투가 용이했고, 국군의 화력과 전투력이 미약해 곳곳에서 방어선이 돌파되는 위기상황이 조성됐다.
당시 다부동이 붕괴돼 대구를 빼앗긴다면 더 이상 북한군을 막을만한 시간과 공간은 없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다부동 전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긴박한 상황이었다.
임시 수도가 있는 대구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최후의 보루였기에 다부동 일대 고지에서의 전투는 치열했고,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뤘다. 백선엽 장군의 국군 제1사단 장병들은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는 날은 한 날 한 시로 하자"는 비장한 맹세 속에 혈전을 치렀고, 끝내 북한군을 물리쳤다.
북한군은 9월 공세에서 다부동을 통한 대구 정면 돌파보다는 영천 돌파에 더 치중했다. 당시 영천에는 국군 제6사단과 제8사단이 북한군 제8·15사단과 대치했다. 영천지역 전투는 8월 공세의 다부동 전투와 함께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낙동강 방어전의 분수령이었다.
경주 안강·기계에서는 북한군 제12사단이 8월 10일 기계까지 진출했지만 국군은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안강-경주 방향으로 진출할 경우에 국군의 방어선이 2개로 분리돼 대구와 포항의 후방지역이 차단될 뿐만 아니라, 부산 방어를 위한 차후 방어선을 편성하거나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 전투에서 국군 수도사단은 북한군 1천245명을 사살하고 다수의 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거뒀다. 전쟁 발발 후 국군이 거둔 최대의 전과였다.
포항은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유엔 해·공군의 발진기지였다. 이 점을 간파한 북한군은 제12·5사단, 제766유격연대 등을 집중 운용해 8월 11일 포항 진입에 성공해 국군과 유엔군은 위기를 맞았지만, 브래들리 특수임무부대와 민기식 부대가 19일 북한군 180명을 포로로 잡고 포항을 탈환했다. 낙동강 방어선 곳곳을 피와 죽음으로 승리하고 지켜냈던 국군과 UN군은 인천상륙작전 다음 날인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반격을 시작했다.


※최후의 교두보 낙동강 방어선은
1950년 7월 말, 워커 장군은 한반도 최후의 보루인 부산을 지켜내고 총반격을 실시할 교두보로 낙동강 방어선을 설정하고 모든 부대에게 8월 1일부로 낙동강 방어선으로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8월 11일 조정된 최후의 낙동강 방어선은 동에서 서로 포항-기계-신령-다부동-왜관선과 북에서 남으로 왜관-남지-마산선의 총연장 200㎞였다. 남북선 구간을 미군 3개 사단이, 동서선 구간은 국군 5개 사단이 담당했다. 이로써 국군과 UN군은 마산부터 왜관을 경유해 포항까지 연결된 울타리와 같은 방어 배치로 나라의 운명을 걸고 북한군과 한판의 승부를 겨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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