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약 파는 정치인, 중독에 빠진 국민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한국인 상당수가 '정쟁 중독'에 빠져 있음이 분명하다. 몇 가지 증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폭설이 예고됐을 때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 신속한 제설 작업과 대중교통 확대 운행을 지시했다. 8월 수도권 집중호우 때는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은 상황에 맞춰 출근 시간 조정을 적극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10월 말 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교통과 의료 시설 확보를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를 해야 눈(雪)을 치우고, 출근 시간을 조정하고, 의료 시설을 확보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이 굳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했나. 굿을 했나? 연애를 했나? 1분 단위로 낱낱이 밝히라'고 트집을 잡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은 보여주기식 발언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많은 국민들이 '정쟁'에 중독돼 있고, 매사를 '정쟁화'하고 유통시켜 이익을 취하는 모리배들이 수두룩하다.

대통령에게 묻지 않아도 될 것을 묻느라 정작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 것에는 관심이 없고, 대통령은 엉뚱한 대답을 준비하느라 정작 풀어야 할 과제에 집중하지 못한다. '정쟁 중독' 국가가 치러야 할 대가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우리 국민이 앓고 있는 '정쟁 중독' 증상 중 하나다. 김 의원은 지난 9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카메라를 의식해 이재정 민주당 의원을 쫓아가 악수하는 장면을 의도적으로 연출했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었다. 10월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터뜨렸지만 허위로 드러났다. 11월에는 민주당 대변인 자격으로 이재명 대표와 페르난데즈 주한 EU 대사의 비공개 면담 내용을 조작해 기자들에게 발표했다가 EU 대사의 항의를 받았다. 이 거짓말은 여타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른, 당리당략을 위해 국기를 흔드는 거짓말이었다.

김 의원이 헛발질을 계속하니 '한심한 바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 의원은 바보가 아니다. 그가 늘어놓는 거짓말과 근거 없는 의혹은 대부분 윤 대통령이나 한 장관을 겨냥하고 있다. 대다수 민주당 지지자들,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에게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공적(共敵)이다. 사실이든 거짓이든 두 사람을 헐뜯는 일 그 자체로 지지자들은 김 의원을 파이팅 넘치는 전사, 할 일을 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EU 대사 면담 내용 조작 발표라는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그가 당직에서 쫓겨나거나 국회의원직에서 물러나기는커녕 '민주당 스타 의원' 대접을 받고, 당 대표의 신임을 받는다는 사실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김 의원은 '정쟁'을 갈구하는 지지자들에게 '옐로 허위 콘텐츠'를 제공하고, '정쟁'에 취한 지지자들 덕분에 당내 위치를 탄탄히 굳히고 정치후원금도 걷어 들인다. 한심한 바보가 아니라 '짝퉁'을 진짜처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재주가 남다른 것이다. 오히려 '윤 대통령, 한 장관 까는 이야기'라면 짝퉁이라도 무조건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한심한 바보들이다.

비전과 합리적 의견을 제시하는 정치인보다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을 더 좋아하는 세태, '옐로 허위 콘텐츠'를 생산하는 정치인을 파이팅 넘친다고 평가하는 지지자들, 정쟁에 중독돼 있으면서도 자신이 깨어 있는 시민인 줄 아는 사람들, 그들이 한국 정치를 초토(焦土)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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