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걸린 뒤로 냄새를 맡을 수 없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소위 롱코비드(Long COVID) 증상을 호소하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가 늘고 있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확진 후 3개월 이내 발생해 2개월 이상 지속된 증상을 '롱코비드'라 정의한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코로나19 환자 147명을 3개월 이상 추적 관찰한 결과 55.8%가 롱코비드 증상을 호소했고, 만성피로(32.7%), 기억력 감퇴(15%), 후각 장애(14.3%) 순이었다.
후각 장애의 흔한 원인은 감기 바이러스에 의한 상기도 감염, 축농증, 외상 등이다. 다행스럽게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후각 장애는 대부분 수 주 내에 호전된다. 영국의학저널(BMJ)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후각 장애 환자의 약 96%가 6개월 안에 회복되었다.
코로나19를 앓은 후 수 주 내로 후각 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다른 원인은 없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후각 장애의 경우 경구 및 국소용 스테로이드 투여가 보편적인 치료법이지만 기대만큼 호전을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때도 있다. 마땅한 '대안 치료'가 없어 의사도 답답한 마음이 든다.
"어떤 향을 좋아하세요?" 몇 해 전부터 후각 장애 환자에게 드리는 질문이다. '커피 향, 와인 향, 화장품 향, 꽃냄새, 풀냄새, 우리 손주 냄새' 대답하는 환자의 표정이 밝아진다.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 향을 아침, 저녁으로 5분 이상 맡으세요." 10여 년 전 독일에서 처음 시도된 후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후각 훈련법'이다. 후각 신경에는 손상된 회로를 복구하는 '가소성'이 있어 훈련으로 그 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이론에 착안했다. 후각 훈련 후 뇌 MRI에서 후각 관련 부위의 활동성 증가도 확인되었다. 아주대병원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환자가 선호하는 향으로 훈련했을 때 치료 효과가 더 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는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후각 능력의 소유자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서는 '인간의 체취'가 나지 않음을 깨닫고 충격에 빠진다. '궁극의 향수'를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빠진 그는 소녀들의 향기를 얻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마침내 원하던 향수를 만들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세상에서 소외된 채 사랑을 갈구했던 주인공이 진정 바랐던 것은 따듯한 '사람의 향기'였는지 모른다.
인간이 구분할 수 있는 냄새는 1조 개가 넘는다. 그중 가장 좋은 냄새는 '사람의 향기'가 아닐까? '사람의 향기'는 결코 실험실에서 만들어 낼 수 없다. 한 사람이 걸어온 길에서 저절로 풍겨 나온다. 그리고 '사람의 향기'는 향수보다 더 멀리 가고 더 오래 타인의 마음에 기억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겪으며 우리는 '사람의 향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째, 우리 곁에는 노숙인, 쪽방 주민 등 여전히 고립된 채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다. 그들에게 '사람의 향기'를 전하는 성탄절과 세모(歲暮)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진료실의 창을 통해 타전한 저의 이야기에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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