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건보 재정 바닥 앞둔 개혁이 얼빠진 일인가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지난해 외래 의료기관을 이용한 횟수가 연간 365회 이상인 사람이 2천550명이라고 한다. 그중 500회 이상 529명, 1천 회 이상도 17명이다. 병원이 쉬는 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쉬지 않고 1, 2차례 이상 방문해야 이런 기록이 나온다. 이들에게 급여비로 투입한 액수는 251억4천500만 원에 달한다. 1인당 연간 1천만 원가량이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됐다. 얼마나 아팠으면 매일 병원을 찾겠냐 하겠지만, 대다수는 중증 질환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급여비용을 365회로 나누면 회당 평균 2만7천 원꼴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매일 이 병원 저 병원 쇼핑하듯이 다닐 수 있는 것은 본인이 내야 할 진료비 부담이 적으니 가능한 것이다. 동네 개업 의원 원장에게 들은 얘기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병원을 찾는 한 환자는 관절염 파스를 처방해 달라고 했다. 이 사람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의료보호 대상자여서 본인부담금마저 없다. 매일 한 묶음씩 모은 파스는 지하철역 등지에서 팔린다는 것이다. 공공부조(公共扶助)인 의료급여제도를 악용하는 한 단면이다.

소위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건보 재정이 6년 뒤에는 고갈될 위기에 처했다.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이 넘게 들어갔지만, 정작 필수 의료는 보장이 약화된 채 불필요한 의료 남용을 초래해 건보 재정 적자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다. 의학적 필요가 불명확한데도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등을 남발하도록 멍석을 깔아준 꼴이다. MRI와 초음파 검사 진료비가 2018년 1천891억 원에서 2021년 1조8천476억 원으로 10배나 급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연말 발표한 '2020년도 건보 환자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건보 보장률은 전년보다 1.1%포인트 오른 65.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보 재정수지는 문재인 케어가 본격 시행된 2018년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다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2조8천억 원, 1조 원 흑자를 냈다. 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의 병원 방문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부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한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데다, 문재인 케어를 그대로 둘 경우 건보 적립금은 오는 2028년 마이너스 6조4천억 원으로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보험료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보험료 수입은 2017년 49조5천138억 원에서 2020년 63조4천901억 원으로 3년간 28.2% 급증했다. 건보료는 박근혜 정부 때 최대 인상 폭이 1.7%였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2배 수준으로 커졌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건보료 정책을 향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포퓰리즘 정책이자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 방치"라며 문 케어 폐기를 공식화했다. 윤 대통령은 큰 틀의 접근법도 제시했다.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을 강화하고 의료 행위 남용에 따른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병원비 걱정 없는 보장을 자랑하다가 건강보험 곳간이 텅텅 비게 됐다. 그런데도 야당은 "문 케어를 폐기하고 의료보험 개혁을 천명한 것은 한마디로 얼빠진 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 에너지 수급 위기를 부른 탈원전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에 대한 '정책 리셋'을 전임 정부 지우기이자 정치 보복이라는 것이다. 국민들의 치료비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에 대한 처방을 구분하지 못하니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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