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눈 속의 사냥꾼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최성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 대표

칼럼 마감을 앞둔 촉박한 시간인데 오랜만에 큰 눈이 내린다. 며칠째 동장군은 물러날 기미도 없더니 눈 풍경이 귀한 이곳에 함박눈이 내린다. 이런 날은 난방이 잘되는 집에서 할 일 없이 뒤척이며 보내면 좋겠지만 매일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꿈이다. 겨울은 생명이 살아가기 힘든 고난의 시기이다. 동물들은 건강을 위협하는 매서운 추위와 먹을 것을 찾기 힘든 배고픈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 털갈이로 두툼한 옷을 입고 몸에 지방을 저장하며 엄혹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철새처럼 따뜻한 곳으로 장소를 이동하거나 파충류처럼 길고 긴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옮겨갈 수 없는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으로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버텨낸다.

이런 겨울날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네덜란드 화가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으로 불리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사냥꾼이 사냥개 몇 마리와 함께 사냥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낭만적인 겨울 풍경을 보여준다. 보는 이에 따라서 브뤼헐의 화면은 겨울날의 고요하고 춥고, 흐린 날의 이미지를 그려낸 차분한 그림으로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날은 저물어서 해는 넘어갔고 나무는 앙상하다. 마을로 돌아와 기뻐해야 할 사냥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지쳐 보인다.

그림 속 사냥꾼들은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있으며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등 뒤에 잡은 동물이 보이지만 체구가 작은 여우 같은 동물이다. 이 겨울을 지내기에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 사냥의 성과물이다. 호언장담하고 집을 떠났을 사냥꾼은 기대에 못 미치는 사냥감에 주눅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왼쪽 여관의 간판에는 'This is the Golden Hert'라고 쓰여 있는데, 이 문구는 로마의 에우스타키 우스를 가리키는 사냥꾼의 수호성인을 의미한다. 하지만 간판은 한쪽이 떨어져서 아슬하게 붙어있다. 아마도 이것은 사냥꾼들의 빈약한 사냥의 성과물에 대한 암시로 봐야 할 것 같다.

16세기 네덜란드 마을 생활의 세부 사항으로 가득 차 있는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을 보며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는 예전의 우리네 겨울을 생각해 본다. 조선시대에 우리들의 조상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엔 농사를 지을 수 없어 항상 식량이 부족한 계절을 겪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악조건에서 '저장의 지혜'를 발휘했다. 우리 조상들은 찬 바람이 부는 입동 무렵에 김장하여 추운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만들었다고 한다. 거센 한파에 온돌과 화로로 작은 방을 후끈하게 데웠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거세다면 따뜻한 방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지혜로운 우리 조상들은 문과 창에 창호지를 발라 찬 바람을 막았다고 한다. 창호지에 기름을 먹이면 보온과 단열에 뛰어나기 때문에 겨울철 칼바람도 막는 튼튼한 단열재가 되었다고 한다. 실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특히 겨울은 식물이 살아가기가 힘든 시기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키가 큰 식물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꽃눈을 천천히 준비해서 봄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시작할 수 있는 부지런한 겨울을 준비한다. 그렇게 식물은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면서 살아간다. 우리 주변의 이웃 생명체들이 모두 힘들게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도 지혜를 발휘해서 한겨울을 잘 견뎌내자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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