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한 해를 보내며 풀어보는 삶의 방정식

최경규

한 해가 지나가는 시기, 나는 달력을 보며 상념(想念)에 잠긴다. 주제가 각기 달랐던 미완성된 한 편의 영화처럼 여러 일이 뇌리를 스쳐 간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잊혔던 슬픔이 다시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작년 이맘때 하였던 작은 다짐이 기억난다. 어떻게 하면 아픔을 줄일 수 있을까? 내년에는 조금 덜 아파해 보기로 말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에 내가 택한 답은 바로 독서였다. 글을 좋아하는지라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야 할 아픔이라면 삶의 선배들이 써놓은 책을 통해 피해 갈 수도 있을 거라는, 그러한 지혜를 얻으려 무던히 노력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그리 효용성이 높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유인즉 인간사라는 것이 그리 단편적인 활자로만 풀어낼 수 있는 방정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 사이의 기쁨이나 슬픔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일까? 인간(人間)이라는 글자가 말하듯, 사람 간 간극(間隙)을 통해 감정의 결과치는 만들어진다.

어려운 시험이나 계약에 성공하여 기뻐하고, 실패하여 절망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그 역시 배경에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과 함께 한다면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시킬 수 있다. 좋은 사람의 경계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나에게만 보이는 표식이라도 있어 한눈에 알아차리면 좋을 테지만 말이다.

◆기쁨과 슬픔은 인간사이 감정의 결과치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생기는 이마의 주름살과 흰머리의 숫자가 항상 삶의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살아보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또한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절대 조절할 수 없는 타인을 두고 마음을 아파할 일이 아니다. 관점을 타인이 아닌 나로 옮겨 놓아야 한다.

즉 자기를 잘 조절하면 나쁜 사람도 자신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부덕(不德)으로 마음을 조절을 못 할 때는 좋은 사람도 당신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남는다. 감정을 조절하는, 그리고 결정짓는 변수는 무엇이냐는 마지막 물음에 도달할 때 나는 즉답 대신 이 이야기로 대신할까 한다.

마음이 힘든 친구가 상담을 위해 집 앞까지 올 때면 근처 커피숍을 찾곤 한다. 그곳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흰색 털이 마치 부드러운 코트를 입은 듯한 귀여운 강아지이다. 손님들이 오면 작은 강아지는 그들의 곁으로 가서 애교를 부리며, 바닥에 눕기도 하고 말하는 듯이 속삭이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들의 대화가 시작될 무렵이면 눈치가 있는 강아지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앉는다. 걱정에 한숨이 바닥까지 내려올 정도의 고민을 안고 찾아온 친구에게 나는 커피를 마시며, 옆에 있는 강아지를 잠시 보자고 말한다.

강아지의 마음, 실상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 내가 볼 때 그 마음 안에는 불평과 불만이 사람보다는 크지 않을 것 같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금방이라도 누가 크게 소리치면 깨어져 버릴 유리벽 같은 마음에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고통의 시작,욕심과 집착

챙겨주는 음식을 감사하게 먹고, 새로운 이를 보면 인사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며 한동안 말을 잇는다. 진정한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인지, 강아지를 보면서 생각해본다.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인 집착이 없다는 것이 어쩌면 그 비결일지 모른다. 물론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더 먹고 싶어하는 욕심이야 있겠지만 이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원상태로 돌아간다. 이에 반해 우리 인간들 고통의 시작, 바로 욕심과 집착에서 생겨난다.

커피잔을 앞에 둔 친구가 강아지에게서 시선을 나에게 돌리며 삶을 잘 사는 비결이 무엇인지 묻는다. 나는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말한다. 집착이 심해지면 세상을 구성하는 인연 역시 제대로 흐르지 못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좋은 사람이 너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즉 물길이 다르다면 아름답게 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다가오는 한해, 갈 길이 다른 인연에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발전하는 과학 문명에 힘입어 가끔 우리는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심지어 인연이라는 영역까지도 말이다. 갈 길이 다르다고 느낄 때 그 길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고해야 옳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함께 할 때 마음에서는 스트레스와 고통이라는 씨앗이 소리 없이 자라기 때문이다.

대망의 2023년이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로 움츠렸던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더 건강하게 다시 태어나길 바란다. 내년에는 덜 고민스럽고 더 행복하길 바라며 올해의 다짐을 기억해본다.

최경규

최경규 심리상담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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