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부식시킨다. 가난 때문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가난은 우리를 남루하게 한다. 그러나 때로 가난은 진실한 삶과 사랑도 만나게 한다. 가진 것이 없기에 그런 사랑이 더 빛나는 법이다.
함민복의 시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에 나오는 가난한 삶은 두 개의 에피소드를 갖는다. 내 만학을 위해 전세금을 빼내 사글세로 옮기기 위해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실어나르는 형님과, 시장 골목의 자장면집 부부의 일화다. 형님의 사랑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던 나는,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자 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배달 나가는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에게 울컥한다. 그 가난의 빛 때문에 물배가 부른데도 나는 자장면을 남김없이 먹는다. 그의 또 다른 작품 '눈물은 왜 짠가?'에 나타나는, 설렁탕에 소금을 많이 풀었다며 국물을 더 달라 해서 아들에게 부어주는 어머니와, 그게 부끄러워 투가리를 부딪치는 아들, 애써 그 모습을 외면해 주는 주인아저씨의 모습은 우리를 슬픔의 빛 속에 싸이게 한다. 그 슬픔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그 슬픔과 연민의 극치는 아마도 김종삼의 짧은 시들이 아닐까? 특히 '묵화(墨畫)'에 나오는 할머니와 소는 성가족(聖家族)의 느낌마저 풍긴다. 고된 하루 일을 끝낸 소와 곁의 할머니는 서로 발잔등이 부었고, 적막하다. 그러니 "물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질 밖에. 둘은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도 연민으로 생을 이어간다.
백석도 가난이 불러오는 슬픔에도 맑은 친구를 호명하며 세상을 이겨나간 시인이다. 거기에는 흰밥, 가재미와 같은 음식친구[膳友], 흰당나귀 같은 동물, 나타샤 같은 친구도 있다.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러 왔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화자가,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가무래기의 낙(樂)')이라는 응수를 보라. 그는 가난 속에서도 맑은 친구들을 잘도 불러내어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외친다.
허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래 문장에 이르면 대체 가난이 무슨 미적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당신은 아무 희망도 없이 돈을 빌리러 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한테서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 비럭질을 해야할 정도로 가난하면 몽둥이로 쫓아내지도 않소. 모욕이 더 골수에 더 사무치도록 아예 빗자루로 인간 사회에서 쓸어내 버리지. 왜냐면 극빈 속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기를 모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죄와 벌') 세상에서 쓸어내 버려질 것을 예감하는, 자괴와 자학에 이른 이 '극빈'의 심리.
집세 및 공과금 70만원이 든 봉투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유서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한 단독주택 반지하의 세 모녀를 기억할 것이다. 가난에 빛이 드리우기 위해선 인간에게 최소한의 위엄은 갖추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언가를 고민해 보는 세밑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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