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칼이 된 고기

황정화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

황정화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
황정화 녹색당 대구시당 운영위원장

경북대 서문 인근에는 경북대 무슬림 유학생들의 기도처인 '다룰이만 경북 이슬라믹센터'가 있다.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종교적 의무로 행하는 학생들에게는 유학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 공간이다. 무슬림 학생들은 유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2020년 2층짜리 건물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그동안 주민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건축 소식도 미리 알렸기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기도는 본래 조용히 행해지며, 새로 만들 건물에 제대로 된 환기 시설을 갖추면 음식 냄새로 인한 민원도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극렬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다.

반대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그곳은 실제로 이격 거리가 거의 없이 낮은 담만으로 구분된 주택지로 2층 양옥 주택들도 서로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깝다. 더 많은 학생들이 기도를 위해 드나들고 여럿이 모여 종교 행사를 열 경우 생활에 미칠 불편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주장도 일견 이해가 된다.

지난해 주민들이 공사 중지를 요청하자 북구청은 민원을 즉각 수용해 공사를 중지시켰다. 그러나 법원은 사원 건축에 법적 하자가 없으니 공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법적 반대가 어려워지자 주민들은 '공포'와 '혐오'를 적극적으로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공사 현장 바로 옆에 삶은 돼지머리가 놓이고 족발이 걸렸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들을 향해 전시된 고기는 주민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무기인 셈이다. 모스크 형태의 건물이 아님에도 건물의 신축으로 그 일대가 이슬람화될 것이라며, 주변을 이슬람화하려는 의도를 품은, 심지어 테러를 저지르는 무도한 집단으로 유학생들을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도시는 본질적으로 낯설고 다른 것들이 섞이고 공존하는 공간이다. 인종, 종교, 언어 등이 다르고 친근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의 옆집에 누군가 이사 오는 것을 금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이미 2014년부터 무슬림 학생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별다른 문제 없이 기도를 해 왔다. 지금도 유학생들은 그저 기도하길 원할 뿐이며,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태도를 갖추고 있다.

"구청장은 관할 구역 내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들이 지역사회에 빠른 시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외국인 주민들이 지역 주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여건 형성을 위한 적절한 시책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 문구는 '대구광역시 북구 외국인 주민 지원 조례'(2007년 제정)의 일부이다. 북구청장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북구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역 주민들과의 불편을 줄이고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함에도 "무슬림 유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역차별이다"라며 오히려 외국인 혐오를 부추겼다. 여전히 무슬림 학생들에게는 '기분 나쁘면 나가라'는 식으로, 주민들에게는 '어디 한번 쫓아내 보라'는 식으로 뒷짐을 진 채 물러서 있다. 이대로 경북대 인근을 혐오와 언어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내버려 둘 셈인가.

죄 없는 돼지는 고기가 된 것도 서러운데,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무기가 되어 오늘도 그 자리에 전시되어 있다. 같은 도시에 사는 나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 주민들의 날 선 혐오가 슬프고, 혐오를 견뎌야 하는 무슬림 유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부디 학생들의 기도 시간에 신의 위로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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