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성걸 칼럼] 이태원 참사, 정치적으로 악용 말라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2022년 임인년을 보내며 가장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을 다시 떠올려 본다. 10월 29일 밤 10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비좁은 골목 안에서 핼러윈 파티를 즐기려 몰려든 수많은 인파 속에서 순식간에 300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압사상 사고가 발생했다. 결국 158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회적 참사로 기록되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기에 참척(慘慽)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을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답답했던 코로나 상황이 지나면서 하루나마 즐겁게 놀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자식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으니 그 통한의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어떤 위로로도 그 고통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잘 알지만, 대다수 국민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함께 아파하고 있음을 유족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이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많은 위기 징후가 있었고, 현장의 다급한 신고 전화가 빗발쳤음에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 서울시와 경찰청, 소방청, 그리고 상위 행정기관으로서 행정안전부로 이어지는 안전관리 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밝혀지고 있고, 그에 따라 구속 또는 불구속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국회의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미 경찰 수사가 상당히 진척되었고, 조만간 기소가 이루어져 재판 과정을 통해 책임의 유무와 소재가 명명백백히 가려질 것이다.

유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그처럼 절규에 가까운 신고 전화가 빗발쳤음에도 경찰이나 구청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원통하고 안타까운 일은 없다. 게다가 사건 직후 경찰 병력이 더 투입되었다고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는 취지의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몰지각한 언사가 아닐 수 없었다. 후에 사과는 했지만 이미 찢어진 유가족의 마음은 무슨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정부가 5일간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해 곳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할 수 있게 했고, 대통령도 여러 차례 이곳저곳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방문해 비통한 마음을 전했다. 용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최초로 사회적 참사를 재난으로 인정해 장례비를 비롯한 지원책을 강구한 것도 국민의 아픈 마음을 대신한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희생자들을 위한 49재를 계기로 이태원 참사를 정권 퇴진 등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유가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가 비판을 받고서야 동의한 사람들만 공개하고, 이태원 참사를 이용해 대선 불복과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등장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복잡한 사회에서 드물게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때는 무려 502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성수대교 붕괴 때도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1994년 5월 21일 오전 7시 40분에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는 등교하던 학생들의 희생이 많았고,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2분쯤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때는 쇼핑하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성수대교/삼풍백화점 참사가 본질에 있어 다르지 않음에도 후자는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에도 법률에 따라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졌고, 책임 소재를 가렸으며,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조치에 만전을 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세월호와 이태원은 왜 국민의 순수한 애도의 마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고 하는가. 참척의 고통을 애써 참고 있는 유족들 뒤에서 정치적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더 이상 얄팍한 정치적 이익으로 국민을 갈라놓으려 하지 말라. 유족들께도 간곡히 호소한다. 여러분을 앞세워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에 속지 마시라. 정부도 관련된 사람들의 수사와 기소가 마무리되면 국가 안전과 질서 유지 의무가 있는 행정안전부의 이상민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 그가 법적 책임이 있어서 교체하라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자가 났음에도 정부에서 도의적·정치적 책임을 질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면 그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부이겠는가. 그 책임을 져야 할 자리가 바로 행정안전부 장관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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