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계묘년이 새롭게 밝았다.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코로나19 여파로 우리 모두 힘든 가운데 여기까지 왔다. 그러한 가운데 지역 음악계도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왔다. 필자는 새해 서두에 우리 지역 음악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국 최초 가곡에 대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어 펜을 들었다.
사실상 한국 음악계는 2년 전 2020년을 '한국 가곡 100주년'으로 삼고 기념했다. 100년 전의 상황은 서양식 창가에서 겨우 한국 작곡가에 의해 예술가곡과 동요가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한국 가곡 100주년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를 기점으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음악가면서 동시에 문필가였던 홍난파는 1921년 단편 소설집 '처녀혼'(處女魂)을 발간하면서 책 서두에 '애수'(哀愁)라는 곡의 악보를 실었다. '애수'는 난파가 '처녀혼'을 발간하기 1년 전 1920년 4월 25일 본인이 직접 작곡한 12마디의 피아노곡이다. 이 곡은 오늘날 널리 애창되는 '봉선화'의 선율과 같다.
그런데 평소 난파와 교분이 있던 음악교육가 김형준(金亨俊) 선생이 일제하의 우리 민족 처지가 집 뜰 앞에 피고 지는 봉선화와 닮았다고 여겨 "울 밑에 선 봉선화야…"로 시작하는 가사 3절을 만들어 넣고 '봉선화'(鳳仙花)로 이 곡의 제목을 바꾸었다. 이후 난파는 1926년 자신이 편집하여 발간한 '세계명작곡선집'에 세계 각국의 명곡 20곡과 함께 '봉선화'를 수록하여 발표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1920년 난파가 작곡한 피아노곡 '애수'에 김형준이 가사를 삽입함으로써 가곡 '봉선화'로 바뀌게 된 것이 6년 뒤의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봉선화'는 난파가 먼저 피아노곡으로 작곡했고 이후 김형준이 가사를 붙임으로써 비로소 가곡이라는 장르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마도 난파는 피아노곡 '애수'가 이후에 가사가 붙은 가곡 '봉선화'로 바뀌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음악계는 '봉선화'가 가곡이 되기 이전 피아노곡 '애수'의 작곡 연도인 1920년을 가곡 '봉선화'의 탄생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오히려 '봉선화'보다 4년 정도 앞선 1922년 이은상 시, 박태준의 7개의 가곡이 훨씬 앞서는데 이 곡들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이다. '동무 생각'(思友)을 비롯해 '광야' '고요한 산림' '님과 함께' '미풍' '소낙비 천기' '평온한 바다' 등이 이들이다. 이듬해 1923년에 작곡된 김소월 시, 조두남 곡의 '옛 이야기'가 그 뒤를 잇는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최초 가곡은 홍난파의 '봉선화'(1926)가 아닌 박태준의 7곡(1922)이라 함이 옳다. 바로 지난해 2022년이 한국 가곡 100주년이었다. 한국 최초 가곡을 '봉선화'라고 하는 데는 필시 곡의 탄생 과정에서 기악곡과 성악곡의 장르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거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봉선화'에 기대어 온 지나친 민족 감정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대구 지역 음악계뿐 아니라 한국 음악계는 100년 전 박태준의 '동무 생각' 외 6곡의 가곡을 재조명하고 우리나라 최초 가곡을 작곡한 박태준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기려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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